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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고칠 수 있는 여유를 두면 실패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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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고칠 수 있는 여유를 두면 실패가 적다
  • 박희경/지방부장, 포항담당
  • 승인 2014.02.18 0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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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의 도리란 코는 크게 하고 눈은 작게 하는 것이다. 코가 크면 작게 할 수 있지만 작을 경우 크게 할 수 없고, 눈이 작으면 크게 할 수 있지만 클 경우 작게 할 수 없다. 이말은 ‘한비자 설림(說林) 하’편에서 조각가 환혁(桓赫)이 한 말이다. 이렇듯 모든 일에 고칠 수 있는 여유를 두면 실패가 적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 모든 일에 여유를 둬야 실패하지 않는다. 세상일에 한 가닥 실마리를 남겨두면 훗날 서로 다시 만나게 된다. 사람을 대할 때 극단적인 태도로 임하는 것은 좋지 않다. 서로 여유를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는 여지를 남겨 그에게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 또한 칭찬할 때도 여유를 남겨둬 계속 노력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줘야 한다. 또한 계획을 세울 때에도, 인생을 영위할 때에도 여유를 남겨 둬야 한다. 그래야만 균형을 이루고 대립적인 관계에서 평행을 유지하며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래야만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 그리고 뜻을 굽힐 때와 펼 때 침착할 수 있다. 한 심리학자가 친구를 대상으로 실험을 시도 했다. 그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식탁 위에 있는 식기를 의도적으로 친구 쪽으로 하나씩 옮겨놓았다. 그러자 이야기꽃을 피우던 친구는 조금씩 불안해졌고 결국 그에게 화를 내면서 왠지 모를 압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실험을 통해 심리학자는 누구나 자기 영혼의 공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머리카락은 온통 엉클어지고 기름투성이의 옷을 걸친 거지가 시멘트 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는 과자 부스러기 안주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주변의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듯 했다. 연민의 눈으로 그의 곁을 지나던 한 신사는 무심코 1000원짜리 한 장을 그에게 건네줬다. 이에 흠칫 놀란 그는 우걱우걱 과자를 씹던 일을 멈추고 내가 준 1000원짜리를 침울하게 내려다보기만 했다. 1000원짜리 한 장이 그의 처지를 일깨워 준 것이다. 신사는 결국 그의 기다란 탄식소리를 듣고 당황한 나머지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신사는 그 길을 갈 수 없었다. 우리는 마땅히 선행을 베풀어야 하지만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의 영혼 공간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독립적인 정신세계와 자존심을 갖고 있다. 선행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정신세계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무더운 여름 날 한 어촌의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교사들이 학생들을 인솔해 바닷가로 물놀이를 갔다. 사고를 염려한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물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이 먼저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자신을 경계로 안쪽에서 놀도록 허락을 했다. 아이들은 마냥 즐거웠고, 겁이 많은 아이들까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한동안 모두가 신나게 놀고 난 후 하나 둘씩 물속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교장선생님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속에서 나온 저학년 여자 아이들이 사람들 앞에서 윗옷과 아래옷을 모두 벗어 들고 물기를 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햇살이 눈부신 해변에서 벌거벗은 아이들의 모습이 펼쳐진 것이다. 교장선생님은 무슨 짓이냐고 큰소리로 제지하려다가 교육자의 직관으로 순간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해변에서는 어느 누구도 아이들의 이런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고학년 학생들조차 별다른 눈길을 보내지 않은 채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었다. 아무런 소동도 일어나지 않았고, 여자 아이들은 태연하게 옷을 짜서 다시 입고는 놀기를 계속했다. 아이들이 지나치게 세상물정을 꿰뚫어 철이 들거나 부끄러움을 배워야 할 필요는 없다. 또한 어른의 구구절절한 세상사를 미리 알아야할 필요도 없다. 자신만의 세계에 여유를 가진 것이다. 만일 교장선생님이 벗은 아이들을 지적했더라면 그 여자 아이들은 두고두고 그 일을 기억할 것이고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들의 행동을 비아냥거렸을 것이다. 세상일들이 ‘큰일 났다! 큰일 났어’라는 말처럼 심각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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