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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 서길원 칼럼-정부의 관음증과 사이버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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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 서길원 칼럼-정부의 관음증과 사이버 망명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4.10.15 0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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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설혹 하는 말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권력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 같지 않는 말이라 하더라도 그 말하는 입을 말하지 못하게 해서는 안된다.”최첨단 IT강국인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그들의 IT조국을 버리고 사이버 망명에 나서고 있다. 국내 최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이 수사 당국의 검열에 부역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카톡 이용자들이 검열이 불가능한 ‘텔레그램’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SNS상의 집단 망명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부터 시작됐다. 지난달 중순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무겁고 엄했다. 정부는 황송함에 황급히 칼을 빼들었다. 정부는 서울중앙지검에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설치하는 한편 허위사실 유포사범은 벌금형에 그치지 않고 재판에 회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최초 유포자뿐 아니라 확산·전달자까지 모두 엄벌키로 했다. 말 같지 않는 말을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대한민국 SNS망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팩트도 뒷받침 하면서 가세했다. 지난 1일 경찰이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 부대표와 그의 지인 3000여명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이 이뤄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3700만명의 가입자로 국내 최대 SNS기업이자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 이용자들은 집단 패닉에 빠졌다. “누군가 나의 대화를 엿듣고 있고 정부에서는 필요하면 어느 때라도 나의 사적대화까지 살필 수 있겠구나” 하는 충격에 빠진 것이다.

SNDS상의 사찰 공화국을 탈출하기 위해 카톡을 대체할 어플이 필요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말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공간이 필요했다. 사이버 망명과 텔레그램 열풍은 그렇게 시작됐다.아이어니컬하게도 지난 1일은 ‘카카오톡’이 ‘다음’과 합병을 공식 선언하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 날이기도 하다. 카카오톡의 주가는 급락했고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텔레그램은 입에서 입을 통해 순식간에 전국민에게 알려졌다. 1주일만에 150만명이 텔레그램에 가입했다.러시아의 파벨 두로프가 개발한 이 앱은 대화내용을 암호화시켜 보안성이 뛰어나다는 장점과 서버가 독일에 있어 국내 수사기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주목받는 망명처가 되고 있다.

카톡이 대화 내용을 서버에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데 반해 텔레그램의 ‘비밀대화’ 기능을 이용하면 서버에 기록이 남지 않는데다 설정한 시간이 지나면 메시지가 자동으로 삭제되는 기능에 이용자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다음카카오는 최근 불거진 사이버 검열 논란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의 공식 사과문을 올리고, 카카오톡 이용자 정보보호를 위해 ‘프라이버시 모드’를 연내 도입한다고 밝혔다.다음카카오는 이러한 보안 강화 조치를 마련하는 작업을 '외양간 프로젝트'로 이름짓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에 돌입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반성에서 시작하는 의미로 ‘외양간 프로젝트’로 명명했다고 하지만 잃어버린 소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너의 사생활을 보고 싶다’는 정부의 관음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이버 망명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텔레그램의 인기는 언론자유지수와 반비례한다고 한다. 언론자유가 억압받고 있는 나라일수록 인기 있다는 뜻이다. 실례로 핀란드, 네덜란드 등 언론자유 지수 상위권의 국가에서는 텔레그램의 다운로드가 250위권 밖인 반면 텔레그램 다운로드 1위인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는 68위다. 프리덤하우스의 ‘2014 언론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노무현 정권 때의 31위 보다 2배 이상 후퇴했으며 폴란드(49위)나 아프리카 가나(52위)보다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버 망명 현상은 정부가 ‘창조경제’를 외치면서도 창조의 싹이 자라나는 것을 허용치 않는 모순된 현실이 낳은 단면이다. 창조는 ‘자유와 상상력’의 산물이다. 특히 민주국가에서 자유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이고 이는 ‘말하는 자유’를 말한다.설혹 하는 말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권력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 같지 않는 말이라 하더라도 그 말하는 입을 말하지 못하게 해서는 안된다.국민은 권력자들이 듣고 싶지 않는 말을 할 자유가 있으며 권력자들은 듣기 싫은 소리를 들을 의무가 있다는 것을 최근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사이버 망명 현상은 말해주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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