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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9] 서길원 칼럼-개불알꽃이 뭐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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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9] 서길원 칼럼-개불알꽃이 뭐가 어때서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5.03.25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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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때가 되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피고 지는 계절의 순환이 엄숙하다. 오늘은 이처럼 형형색색 화사하지만 내일은 또 지리라. 봄꽃들은 우리들에게 내일이면 질테니 오늘은 마음껏 아름답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다.” 요즘 신문을 보다보면 주제넘은 걱정을 할 때가 많다. 그 것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미국 주도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를 놓고 틈새에 낀 한국의 처지가 애잔하고 안타깝다. 미국은 주한미군 보호를 명분으로 사드의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고 중국은 공개적으로 ‘우려와 관심을 중시해 달라’며 사드를 도입하지 말라고 협박하고 있다. 우리의 선택은 사드는 도입하고 대신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는 가입하는 것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는 듯하다. 어찌보면 모범답안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안보적 측면에서 북한의 핵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마당에 미국이 싫다고 해도 사드는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다 중국주도의 AIIB 역시 시대흐름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전략적 모호성’인지 애매성인지를 견지한다며 정답을 알면서도 어물어물 양쪽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정부가 심히 안타까운 것이다.김정은, 그를 최고 존엄이라 부르는 북한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발송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며 해당 지역 우리 국민들에게 대피하라고 겁박하는 등 협박을 아예 입에 물고 다닌다. ‘이에는 이’라는 것이 기본 방침이지만 그렇다고 맞대놓고 싸울 수도 없는 일이다.

 대북 전단을 막자니 북한의 협박에 굴복하는 것 같고 가만히 두자니 남북관계가 파탄날 것 같아 입장이 딱하기 그지없다. 많은 고위관료나 정치인들이야 식구들이 미국 등 해외 시민권을 보험증서처럼 갖고 있어 전쟁이 난다 한들 대수는 아니겠지만 문제는 미국에서는 그들이 한국에서처럼 큰 소리치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조국이 큰 소리 치고 싶어 필요할지 모르지만 필자 같은 사람들에게 국가는 생존 그 자체다.북한에 굴복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그렇다고 아차하면 미국으로 튈 수도 없는 이들의 걱정은 이래저래 어눌함으로 남는다.

다행히 청문회에서 병역문제 등으로 혼쭐이 난 국무총리가 이를 만회하고자 취임과 더불어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 전임 정권 때의 일을 들추면서 기업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하지만 이 또한 얼마나 갈 것이며 다음 정권에서는 현 정권의 비리를 또 겨눌 텐데 그 때는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 것인가 걱정과 관심이 뒤섞인다.내가 무슨 고위 공직자도 아니고 미국 시민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리 걱정이 느는 것은, 아무래도 걱정은 나이에 비례하나 보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냐고 흘기는지, 덧없는 인간들의 다툼을 비웃는지 정원의 매화가 환하게 웃고 있다. 몇 년 전 접붙인 홍매가 무더기로 핀 백매화 한 쪽에 빨간 크레파스 줄무늬를 그려 놓은 듯 피어나 봄볕에 반짝인다.

어디 그 뿐인가. 개불알꽃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 좀 보소!’하듯 양지쪽 언덕에 파아란 은하수로 피어나고 나팔을 닮은 재래종 동백은 가지에서 내려와 발밑에서 마지막 단심(丹心)을 사르는데 울타리엔 노란 수선화, 뒷산엔 연분홍 진달래가 한창이다. 때가 되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피고 지는 계절의 순환이 엄숙하다. 오늘은 이처럼 형형색색 화사하지만 내일은 또 지리라. 봄꽃들은 우리들에게 내일이면 질테니 오늘은 마음껏 아름답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다. 머잖아 벚꽃이 피면 짧은 봄은 지는 꽃잎과 함께 여름에 바쳐질 것이다. 여류시인 김옥란의 ‘벚꽃은 피는데 사랑은 지는가’는 찰나와도 같은 우리 삶의 덧없음을 관조하며 벚꽃에 비유하고 있다.

‘하얀 눈꽃 같은 꽃송이는 흐드러지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가녀린 몸짓을 흔들고/ 생전에 지지 않을 것처럼/ 저리도 웃고 있건만/ 벚꽃 같은 우리네 사랑은 지는가눈부신 햇살을 머금은 너의 미소는 / 님을 닮은 것도 나를 닮은 것도 같건만/ 나의 눈에 너는 어쩌면 그리도 슬퍼 보이는가/ 내일이면 낙할 너의 모습은/ 기약도 없이 떠나갈 내 사랑과도 같구나부드러운 너의 꽃잎은 그 작은 바람에도/ 견디지 못하고 흩날리고 마는 구나/ 벚꽃아, 사랑아.../ 사람들은 저마다 너를 보며 감탄 하네나뭇가지에 붙어 있을 동안만이라도/ 아름다워라 마음껏 아름다워라/ 내일이면 너도 지고 사랑도 떠나간다(이하 생략)’ 생전에 지지 않을 것 같은 꽃들도 내일이면 낙화한다.

그러니 피어있는 동안만은 마음껏 아름다워야 한다. 개불알꽃이면 어떻고 동백꽃이면 어쩌며 진달래꽃, 개나리꽃이면 또 어찌할 것인가. 너도 꽃이고 나도 꽃이다. 꽃에 등급이 있고 서열이 있는 것이 아닐텐데 ‘나만 꽃이다’라고 우긴다면 민망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피곤함은 주변에 ‘나만 꽃이다’라고 우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기는 경우’는 재물일수도, 권력일수도, 사람일수도, 나라일 수도 있다. 피곤이 걱정으로 변하고 있을 즈음 광주에서 봄나들이 겸해 후배 부부가 찾아왔다. 내온 술상위로 홍매화인지, 백매화인지 꽃잎이 내려앉는다. 불콰해진 우리의 담소도 이 순간 꽃이 되고 꽃잎이 되어 술잔에 넘친다. 너와 내가 모두 꽃이 된다면 민망함도 모르는 주변의 강팍함쯤이 무슨 대수가 되겠는가. 꽃이 곧 힘이거늘. 이봄, 내 빛깔로 내 향기로 마음껏 아름다울 일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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