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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가짜 백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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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가짜 백수오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5.05.21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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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백수오’ 파문이 점입가경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건강기능식품 백수오의 원료에 이물질(이엽우피소)이 들어 있다는 한국소비자원의 4월22일 최초 발표 이래, 소비자들의 불안과 의구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원료 제조업체와 판매업체 등이 무책임하게 나오고, 당국의 대응도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진실이 남용되고 있다. 남용(濫用)이란 '함부로 쓰여짐'을 말한다. 개나 소나 진실을 내세우는 세상이다. 어찌 저리 뻔뻔할 수 있을까 싶은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진실'을 앞세운다.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 부터 3000만원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검찰 조사에 앞서 "이 세상에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특유의 앙다문 입술과 완고한 표정으로 자신의 진실을 애써 강조했다. 역시 성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도 "거짓이 모여봐야 참이 되지 않는다"며 "조만간 무엇이 진실인지 드러날 것"이라고 항변했다.진실에는 실체적 진실과 법리적 진실이 있다. 국민들은 실체적 진실을 원하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진실은 법리적 진실에 가깝다. 불행히도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과 언행들에 비추어 실체적 진실은 받은 쪽에 가까워 보인다. 이 전 총리가 성 회장과 단독으로 만나는 광경을 보았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고, 주변을 조직적으로 회유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법리적 진실은 검찰 수사를 통해 곧 가려질 것이다.문제는 국민들이 바라보는 실체적 진실의 강도다. 국민들의 시선은 이미 법리적 진실의 수준을 넘어서 있다. 진실을 앞세우는 이들의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진실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정적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오리발 내밀겠다는 정치공학적 대응 정도로 비쳐질 뿐 그 이상의 진정성은 찾아보기 어렵다.최근 '가짜 백수오' 파문을 둘러싼 내츄럴엔도텍의 대응 역시 실체적 진실을 무시한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달 22일 한국소비자원이 '내츄럴엔도텍의 원료를 분석한 결과 가짜 백수오로 판정됐다'고 밝히자 내츄럴엔도텍은 즉각 반발했다.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27일 내츄럴엔도텍은 주요 일간지에 전면 광고를 내고 "내츄럴엔도텍은 100% 진품 백수오만을 사용한다”고 강변했다. 광고를 본 독자 입장에서는 소비자원 조사결과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내츄럴엔도텍의 진실 주장은 초반 먹히는 듯 했다.그러나 얼마 뒤 식약처가 "내츄럴엔도텍 제품에서 가짜가 검출됐다"며 소비자원 조사결과를 재차 확인하고 나서자 내츄럴엔도텍은 꼬리를 내렸다. “식약처 조사에서 이엽우피소 혼입이 확인됐다"며 공식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그렇다면 100% 진품만을 사용한다던 사흘 전 광고 내용은 무엇이란 말인가. 식약처 조사결과가 발표되지 않았다면 끝까지 진품이라고 우길 요량이었던 것은 아닌가.회사가 주원료의 성분을 몰랐을리 없다. 전 국민을 상대로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면 응당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내츄럴엔도텍이 실체적 진실을 호도하는 사이 시장에서는 주가가 출렁였고, 회사의 해명을 믿은 투자자들은 거액을 날렸다. 진실을 거짓으로 감춘 오리발 전략의 황망한 결과다.진실을 둘러싼 공방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어 왔다. 일부 정치인과 기업의 도덕관념을 새삼 부각시켜 탓할 필요도 없다. 다만 진실을 함부로 내세우는 행위가 당연시되고 있고, 이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진실은 거짓이 아닌 사실, 옳고 그름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가공하지 않는 사실을 말한다. 실체적 진실은 그래서 법리적 진실을 포괄한다. 결정적 증거가 없다고, 증인이 저세상 사람이 됐다고, 힘 좀 쓸 수 있다고, 끝까지 거짓으로 일관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라면 그 사회의 미래는 암담하다.확정적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무조건 오리발을 내밀며, 내 말이 진실이라고 우기는 지도층의 모습을 지금 이 땅의 젊은이들이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들에게 무엇을 근거로 앞으로 정직과 신뢰의 사회를 만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공자는 신독(愼獨)을 얘기했다.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해 도리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다. 전 국민을 상대로 진실을 남용하고, 거짓을 호도하는 행위가 횡행하는 이 시점, 신독은 곱씹어봐야 할 가치다. 홀로는 고사하고 여럿이 있을 때부터라도 삼가할 줄 알아야 한다.파동의 일차 책임은 당연히 가짜 재료를 사용한 원료 공급업체에 있다. 거기에 당국의 무능이 겹쳤다. 소득이 좋다고 백수오를 심었다가 판로를 잃게 된 농민들의 처지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불량식품을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범과 함께 ‘4대 악’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척결 의지를 내세웠다. 그리고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청을 국무총리 직속의 식품의약품안전처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이번에 보니 정부가 실제 식품안전을 지켜내지는 못하고 말만 앞세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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