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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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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 최재혁기자
  • 승인 2015.08.20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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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정치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이어야 한다는 정의를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정의는 현실과 들어맞지도 않거니와 영원히 들어맞을 수도 없게 돼 있다. 최선의 정의를 내리고 나서 정치를 보기 시작하면 정치에 대한 좌절과 환멸은 불가피하다. 반면 최악의 정의를 내려놓고 정치를 보면 정치인들에 대해 한결 너그러워질 뿐만 아니라 정치개혁은 ‘머리싸움’이며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정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정치’를 놓고 보자면, 정치는 행정과 더불어 ‘사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에 불과하다. 이른바 ‘공공선택이론’의 논지이지만, 이 이론의 이념성을 따질 필요는 없다. 보통사람들이 그냥 술자리에서 거칠게 내뱉을 법한 “세상은 다 도둑놈 천지”라는 말을 점잖게 이론화한 것이 바로 공공선택이론이라고 해도 좋겠다.
정치인들은 어떤 이념과 노선을 표방하건 우선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정치인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선거에서 패배하면 남의 이익을 위해 일할 기회도 사라지니 그런 이타적 행위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승리와 이익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 점에선 이타적 정치인도 이기적 정치인과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정치혐오가 나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치인들에겐 매우 좋은 것이다. 정치혐오 덕분에 유력한 경쟁자의 수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에게 “정치는 절대 하지 마!”라는 말이 애정 어린 덕담으로 건네지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정치혐오는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주는 철벽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늘 명백한 의도를 갖고 그러는 건 아닐망정 정치혐오를 증폭시키고 있다. 과거 국회에서의 몸싸움이라든가 지금도 심심하면 터지곤 하는 ‘막말 파동’을 수반한 정치인들 사이의 이전투구 등은 정치혐오를 키움으로써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준다. 과거 과자가 귀하던 시절 어린애들이 과자에 침을 퉤퉤 뱉어놓음으로써 자기 소유권임을 분명히 해놓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인생사에서 진짜로 친구 셋만 있으면 성공이란 말을 한다. 마음을 나눈 친구가 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는 말도 한다. 공자가 선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향기로운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가 있는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 오래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니, 이는 곧 그 향기와 더불어 동화된 것이라 했다.
옛날 말로 ‘불구대천지(不俱戴天之) 원수(怨讐)가 아닌 바에야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는 것이 좋다 했다. 하늘(천:天)을 같이(구:俱) 머리에 이고(대:戴) 살 수 없을 만큼 원한이 맺힌 원수, 즉 이 세상에서 같이 살 수 없으니 ‘네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결판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국민들로부터 불신 받고 배척당하는 것이 요즘 정치판이다. 아무리 정치적 소신과 철학이 뚜렷하고 동기와 목적이 순수하다 하더라도 추구하는 수단과 방식이 배은망덕한 반정치 도의적 행태를 띠고 있다면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가장 친한 친구사이와 남녀 간의 사랑은 갈라서면 한순간에 불구대천지 원수가 되는 경우처럼 ‘공천에 잠 못 드는 금배지’들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판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것이 통설처럼 돼 있다. 내년 4월 총선이란 결투의 시간이 다가오자 정당이나 이념에 따라 피아가 구별되는 것도 아니고, 정의나 명분에 따라 피아가 구별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나의 공천과 당선에 도움이 된다면 친구라도 대립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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