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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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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앞에서
  • 포항/박희경기자
  • 승인 2015.09.01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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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가을이 왔다. 무더위 속 아무도 모르게 가을이 왔다. 이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가을이 코스모스를 데리고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이었기에 더욱 기다려졌던 가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직은 듬성듬성 볼품이 없지만 그래도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가을이 되면 우리는 사색에 빠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산책로를 걸어본다. 살랑살랑 가을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앙칼진 목소리가 분위기를 싹 앗아간다. 한 여인이 핸드폰의 목줄 이어폰에다 대고 “여보세요!, 여보세요!”하고 소리를 빽빽 지른다.
혼자 있고 싶어도 혼자 머물 수 없는 세상,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혼자 있어도 늘 무엇인가에 쫓기거나 몰두하면서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겨 살아가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마치 군중 속에 혼자 있음을 못 견뎌 하는 것처럼,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습관처럼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눌러댄다. 또 혼자 있으면 자동적으로 컴퓨터를 켜기도 한다. 이메일이 오지 않으면 왠지 허전해서 그냥 켜놓고 누군가에게 올지도 모를 이메일을 기다린다.
이제는 들길마저 심한 대기오염으로 가을비를 맞으며 낭만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 옛날 그리운 사람에게, 또는 친한 친구에게 받아보던 손 편지는 사라진지 오래다. 전자우편이나 문자메시지로 소통하는 시대에 편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체취와 그리움이 묻어난 ‘편지’가 주는 기억도 아스라하다. 지금은 현란하고 화려한 거리에서 낭만을 찾기란 힘든 세상이 되었다. 각자는 골방에서 세상을 만나고, 세상은 골방에 웅크린 컴퓨터 앞으로 찾아온다. 직접 만짐으로 얻어지는 ‘접촉’의 체험이 사라져 가고 있다.
만지고 부딪치고 아파하면서 기쁨과 환희로 확산되어가는 아름다운 날의 추억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은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는 좌절을 모르고 끊임없는 욕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아픔이 없는 가상공간에 갇히고 말았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만나고 ‘접속’하며 살아가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살갑게 만날 수는 없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게 체험하고 자극적인 감각 속으로 빠져들지만, 그 어느 때보다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무감각이 슬프다. 순간에 끝나고 흥분하게 하는 가상의 ‘접속’으로 가을날의 비, 빨간 우체통의 추억, 체취가 묻어나는 편지, 그리고 어릿광대를 만날 수 있는 진짜 공간을 잃어버려 안타깝고 슬프다.
달빛 교교한 병영에서 희미한 불빛아래 손때 묻은 사랑하는 애인의 편지를 읽는 시대는 지났다. 보초를 서면서 군복주머니에서 꺼낸 어머니의 비뚤 삐뚤 쓴 편지를 읽고 눈시울을 적시던 추억도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가을비라도 내리면 머리 끝 부터 느껴지는 짜릿한 전율이 손때 묻은 편지 속에 묻어나는 시대는 갔다.
어렵고 힘든 현실에서 판타지를 향한 욕망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어린 아이 입에서 ‘섹시하다’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오는 시대, 조금만 살이 오르면 ‘뚱뚱하다’는 콤플렉스에 갇혀 거울만 바라보는 십대 소녀, 조금만 불만스러운 외모를 가졌다고 성형을 하는 젊은이들, 이 모든 사회분위가가 나를 슬프게 한다.
우리의 영혼들이 방황을 하고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외모지상주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내면의 숭고함을 잊고 살기에 우리의 영혼은 설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대리체험이 가득한 디지털 세상에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아름다운 추억을 잃어버리고 그리고 영혼까지 잃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요즘에 우편함을 보면 편지는 없다. 고작 각종 세금고지서들이 빼곡히 꼽혀 있어도 손때 묻은 편지 한 통이 없다. 우리의 영혼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돈, 명예, 외모, 학력이 모두 떠나더라도 끝까지 남아 당신을 지켜주는 것은 당신이 그토록 외면했던 아름다운 영혼이라고...,”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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