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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으로 가린 편견(偏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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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으로 가린 편견(偏見)
  • 정선/ 최재혁기자
  • 승인 2015.09.0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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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TV에서 가끔 보는 음악 프로그램이 ‘복면가왕’이다. 오로지 노래로만 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이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부르는 노래 외의 목소리는 모두 가성(假聲)을 사용한다. 현란한 마스크와 몸짓에도 눈이 가긴 하지만, 감각은 온통 두 귀로만 집중된다. 애당초 사람을 모르니 노래 외의 모든 외부자극은 평가항목에 들어갈 수가 없는 구조다. 프로그램 콘셉트도 ‘편견(偏見)을 버린 진짜 음악대결’이다.
얼굴이나 몸매 등 ‘겉’은 철처히 배제하고, 노래만으로 실력을 겨루겠다는 의도다. 그간 화려한 무대장치에 섹시하고 예쁜 가수를 내세워 시청률을 높이려 했던 방송사가 왜 이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이는 것에 강요당해 노래의 본질이 그리웠던 사람들에게는 분명 신선하다.
누구에게나 편견은 있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편견일 수 있다. 편견에는 특징이 있다. 스스로가 편견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념이나 철학과 혼용하는 듯 보일지라도, 스스로는 냉철한 이성(理性)과 전문지식을 토대로 한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 용어로 ‘확증 편향’이다. 아무리 합리적 근거로, 과학적 논리로 설득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강화시키는 정보들만 골라낸다. 입맛에 맞는 것에만 귀와 마음을 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본 방송인지 재방송인지도 분간하지 못한 채 채널을 돌리다가 나오면 보았는데 어느 새 다음 회를 기다리는 애청자가 되었다. 보다보니 굳이 남녀 성별에 따라 짝을 짓는 것 같지도 않고, 가수들만 출연하는 것도 아닌 듯 약간 헐렁해보이는 구성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출연자들은 모두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의 노래를 99명의 평가단이 점수를 줘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사람을 뽑는 식이다.
인간 그 자체가 아름다운 악기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어쩌면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좋은 노래는 어찌 이리 또 많은지. 가면을 쓰고 얼굴을 가린 채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호명되면서 그들은 최선을 다해 노래한다. 그리고는 평가를 통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지 못하는 사람이 가면을 벗는데, 누구라고 예측했던 사람이어도 아니어도 환호가 터진다. 생각지도 않던 배우나 코미디언의 절창에는 놀라움의 박수를, 실력 있는 신인에게는 기대의 박수를, 오랫동안 무대를 떠났다 돌아온 가수의 열창에는 반가움과 격려의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무비판적 인정이기에 패자들도 기꺼워하는 듯 보인다.
가면으로 인해 발생되는 진솔함과 자유로운 선택이 주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기분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가왕이 되기는 하지만 온전히 노래 실력만으로 경쟁하는 것도 아니어서 출연자들은 정체를 감추려고 창법을 바꾸기도 한다. 또한 1라운드에 두 사람이 듀엣으로 한 노래를 불러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한 조화를 이루게 하는 장치도 넣었다. 따라서 아주 실력자이더라도 능력 발휘를 다하지 않을 수도 있고 듀엣 곡을 더 멋지게 하려고 자기를 양껏 표현하지 않고 조절할 수도 있다.
이런 게 무한경쟁에 지친 우리에게 활력을 준다. 가면을 이용해 선입견을 배제하고 노래만을 들어보려는 시도나 그런 프로그램에 출사표를 던진 출연 동기 등, 다양한 선택과 이야기가 그 안에 있고 그것이 치유적 감동을 나누게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세계적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가면을 쓴 배우가 등장한다. 팬텀(유령)은 비극적인 삶을 산 주인공이다. 그는 하얀 가면으로 추한 얼굴을 반쪽 가린 채 어두운 지하세계에 은거한다. 기구한 운명의 굴레에 갇힌 그는 사랑과 질투에 휩싸여 복수를 결심한다. 연미복 차림에 가면을 쓰고 절규하는 팬텀의 미스터리와 이어지는 괴사건은 공포와 전율을 낳는다.
가면은 신비감을 준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치부나 진면목을 숨기려는 의지가 가면에 담겨 있다. 유럽에서 익명을 요하는 정치적 모임이나 비밀결사 조직에 참가할 땐 가면을 쓰고 검은 망토를 걸쳐야 했다. 가면 뒤에선 억압된 욕망 표출이 가능하다. 안동 하회탈 놀이에서 탈을 쓴 광대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선 과거 금기시된 가면을 쓰고 마음껏 즐기는 ‘카니발 축제’가 벌어진다. 가면은 인간의 외면과 내면을 분리한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은 인간 심리의 ‘원형’과 ‘페르소나’ 개념을 제시했다. 타고난 심리적 행동유형인 원형(archetype)은 집단무의식 세계다. 페르소나(persona)란 사회생활에서 가면을 쓰고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인격이다.
우리는 겉모습이 진정한 자아인 줄 착각한다. 인간의 심리와 능력은 빙산의 일각만 드러날 뿐이다.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w)’은 자아(自我)를 4가지로 설명한다. 미국 심리학자 조셉 루프트와 해리 잉햄의 이름이 합쳐진 이론이다. 첫째 ‘공개된 자아(open self)’는 외모, 학식, 출신 배경 등을 말한다. 둘째 ‘숨겨진 자아(hidden self)’는 자신만의 은밀한 욕구나 야망을 의미한다. 셋째 ‘눈먼 자아(blind self)’는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만 정작 자신이 보지 못하는 부분이다. 네 번째 창은 ‘미지의 자아(unknown self)’로 자신은 물론, 다른 누구도 보지 못하는 영역이다.
우리는 외모를 중시한다. 내면의 모습보다 겉으로 드러난 용모와 언변, 인상으로만 사람을 평가한다. ‘외모 지상주의’에 몰입된 사회에서 우리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잃은 채 살아간다. 키가 작으면 ‘루저’가 되고 얼굴이 못나면 푸대접을 받는다.
허세와 가식이 판친다. ‘인공의 미(美)’를 만드는 성형수술이 범람하고 진정한 실력보다는 잘 관리된 ‘스펙’이 우대받는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실체가 아닌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모든 이가 ‘편견’의 허상에서 벗어나 내면의 본질을 봐야 건전하고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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