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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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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의 의미
  • 최재혁기자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5.09.10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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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가을이다.모기 입이 삐뚤어지고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처서(處暑)다. 우악스럽게 울어대던 매미소리도 사라졌다.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 밤벌레 소리가 정겹다.처서와 백로를 기다렸다는 듯,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바람이 가을임을 느끼게 한다.
높은 하늘을 바라보느라 바쁜 발걸음을 잠시 멈추기도 하고, 저녁이면 창문을 열고 귀뚜라미 소리를 기다려 본다. 계절이 주는 여유다.
未覺池塘春草夢(미각지당춘초몽) 階前梧葉己秋聲(계전오엽이추성)이라, '연못의 봄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뜰 앞의 오동잎에서는 벌써 가을의 소리가 들린다'라는 주문공(朱文公)의 시구가 떠오른다.
매미소리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을 떠나 보내면서 우리에게 가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은 역시 귀뚜라미 소리로, 가을밤 그 울음소리는 유난히 잘 들린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지면서 지표의 온도가 떨어져 풀벌레들의 소리도 그만큼 위로 퍼지지 않기 때문일게다.
들에서 암컷을 부르며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사랑의 세레나데’는 역시 가을의 상징이다. 가을의 전령사로 불리는 귀뚜라미는 또, 가난한 사람들의 온도계로도 지칭된다. 화씨(華氏)온도를 쓰는 나라의 사람들이 붙여준 별칭이다.
화씨 온도는 1720년대 독일의 파렌하이트라는 사람이 쓰기 시작한 온도 눈금으로 어는 점인 섭씨 0도가 화씨로는 32도다. 중국 사람들이 파렌하이트를 ‘화륜해’로 불러 화씨가 됐다.
시계도 없고 달력도 구하기 어렵던 옛 시절, 사람들은 달을 쳐다보며 세월을 짐작했듯이 기온도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로 짐작했다는 것이다. 즉, 귀뚜라미가 15초간 몇 번 소리를 내는지 헤아린 뒤 거기에 37을 더하면 화씨 기온이 나온다고 한다.
쌀쌀해질수록 조용해지는 가을 풀벌레들의 속성을 계량화했던 옛 사람들의 지혜다. 또 ‘귀뚜라미가 들녘에서 울면 7월, 마당에서 울면 8월, 마루 밑에서 울면 9월, 방에 들어와 울면 10월이다’란 옛말도 있는데 귀뚜라미는 달력 구실도 했던 모양이다. 고려때와 중국 송나라때는 애완용으로 길렀던 것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기도 하다.
‘귀뚜리 저 귀뚜리, 가련하다 저 귀뚜리 / 지는 달 새는 밤에 긴 소리 짧은 소리 절절히 슬픈 소리, 제 혼자 울어예어, 紗窓(사창) 여윈 잠을 살뜰히도 깨우누나 / 두어라, 제 비록 미물이나 無人洞房에 내 뜻 알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는 작자미상의 작품도 전해온다. 님은 떠나고 홀로 텅빈 방을 지키는 아낙네와 외로움을 함께 했다는 얘기다.
일찍이 장자(壯者)는 ‘네 계절은 삶의 일생과 같아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라고 설파했다. 폴란드의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시인은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다’라고 읊었다.
계절은 태양과 달의 궤도가 보여주는 네 국면으로 구성되며, 그런 국면은 흔히 인간의 삶이 보여주는 네 단계에 비유되기도 한다. 계절이 인생의 국면을 상징하지만, 겨울을 유독 ‘계모’로 보는 폴란드의 정서는 특이한데 겨울이 혹독하게 춥고 지루하기 때문일까.
문득 귀뚜라미 소리엔 우리의 전통 가옥의 창문이 제격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선을 다양하게 교차시켜 문양의 조화를 갖춘 나무 오리의 창살과, 은근하고 따뜻한 창호지의 창문이 그것이다.
바람과 소리와 빛이 이치를 따라 들고나는 그런 창문은 자연과 맥을 같이 하는 자연귀속의 사상이 배어 있어 신비하기까지 하지만 그런 창문과는 결별한지 오래다. 시멘트벽, 그리고 차가운 쇠창틀과 유리의 반자연적 창문에 갇혀 살고 있다.
전통 창문은 어쩌다가 남아 있는 시골의 실그러진 고가나 민속촌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귀한 것이 되었다. 이 참에 가족들과 고가를 돌아보며 순리라는 자연의 이치를 음미하는 것도 좋을 성싶다.
나무는 자연의 섭리를 아는 듯 뿌리로 물을 내리고 잎새를 떨굴 채비하고 있다.미물도 아닌 한낱 나무들도 이 같은 이치를 알고 입추(立秋)면 재생의 준비를 한다고 한다.꽃은 꽃을 버릴 때 열매를 얻고, 강물은 강을 버릴 때 바다에 이른다고 했다. 이렇듯 나무도 버림과 비움의 미학을 알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 처럼 자연의 이치와 같지 않을까. 사람도 계절의 순환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맞는다. 그래서 앞물이 뒷물에 밀려 바다로 나아가듯 인생도 바다로 향하는 여정과 같은 게 아닐까.그런데도 천년을 살 것처럼 시기와 미움과 탐욕으로 허상을 쫓으며 아귀다툼으로 사는 모습을 보면 연민이 든다.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이 가고 이내 서늘한 초가을이다.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署)가 끝나가고 영롱한 아침 이슬이 풀잎에 맺힌다는 백로(白露) 절기가 다가오면서 하늘은 높아지고, 흰 구름은 바람따라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뭉게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드러나면서 벌초를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2주일 후면 천년전래의 명절인 추석이다. 올해도 과일 등이 풍년이 들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풍년이라야 식량의 소요를 100% 충족량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그 정성의 의지와 보람이 너무나도 장하고 아름답다.
곧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면 완연한 가을이 온다. 계절은 또 돌고 돌아 다시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지열이 끓던 여름도 어느덧 급격히 차가워진 강물따라 파랗게 질려 슬금슬금 흘러간다.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 꽃을 비롯, 가을이 다가오는 요즘 진한 풀냄새가 풍겨온다. 누가 뭐래도 가을은 오곡백과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다. 가을은 우리의 육체만이 살찌는 계절이 아니라 정신도 살찌는 사색의 계절이다. 가을은 수행자의 마음이 살찌고, 맑고 아름다워지는 계절이다.
가을은 우리들에게 결실의 보람을 안겨주고 거둬들이는 기쁨을 또한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우리 속담에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는 말이 있다. 이는 딸에 대한 편애도 있지만 가을 햇볕이 더 좋다는 가을의 의미가 담겨 있다.
무상한 것이 세월이라 했던가. 폭염과 메르스로 모질었던 여름도 ‘이 또한 지나 가리’란 말처럼 훌쩍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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