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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수 있게, 오래 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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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수 있게, 오래 사시라”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5.10.29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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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산에 올라 아버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아버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아들아/ 밤낮으로 쉴 새도 없었지/ 부디 몸조심하여 머물지 말고 돌아오너라.
잎이 다 진 산에 올라 어머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어머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우리 막내야/ 밤낮으로 잠도 못자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이 어미 저버리지 말고 돌아오너라.
산등성이 올라 형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형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동생아/ 부디 몸조심하여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너라.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이가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경詩經에 수록된 시 도 읽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하물며 65년을 떨어져 살아야 했던 대한민국 이산가족에 비길 수 있을까. 전쟁이 끝났어도 돌아오지 않는 새신랑을, 아버지를 기다려야 했던 새색시와 아들의 마음은 오죽했겠는가.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시간짜리 작별상봉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어린 두 딸에게 꽃신을 사다 준다던 약속을 65년 만에야 지킨 98세 할아버지는 남쪽으로, 납북 43년 만에 88세 어머니 품에 안겨 흐느끼던 오대양호의 60대 납북어부는 북쪽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이별의 아픔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장성한 아들을 군에 보내며 이별하는 부모의 마음부터 결혼과 함께 아들과 딸을 분가시켜야 하는 이별, 늙고 병들어 죽음으로 다가오는 영원한 이별… 이별 가운데서도 예견된 이별이 아닌 '생이별'은 말해 무엇 하랴.
생이별은 잔혹하다. 대부분 전쟁과 연루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생이별의 정점이었다. 고향과 조국을 등지고 미국과 영국, 먼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야 했던 이별의 상처를 저마다 품고 살았다. 동·서 둘로 나뉜 분단 독일인들의 생이별도 있다. 독일 작가 w 제발트의 소설 '이민자'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이별의 회환으로 평생을 고독과 싸우다가 소리 없이 죽어간다. 그러나 유럽의 생이별은 통일 독일 이후 자유로운 재회를 통해 외형적으로는 치유된 상황이다.
생이별의 가슴앓이로 눈물 마를 날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아직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이다. 생이별한 지 65년이다. 멀고 아득한 세월이라 이별한 대상의 얼굴도 기억할 수 없다. 장롱 안에 간직해둔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뿐이다. 사진은 65년 전 청춘의 얼굴을 담고 있을 뿐, 흘러온 세월의 풍상은 없다. 모질고 잔인한 시간이다.
새색시와 새신랑이 신방을 차린 지 1년도 안 돼 전쟁이 터졌다. 단란하게 신혼을 즐기던 신랑은 1950년 어느 가을날 인민군에 끌려 북으로 갔다. 새색시 뱃속에는 이미 아들이 자라고 있었다. 새색시는 "금방 돌아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영영 이별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났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남과 북이 갈라진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인 영향으로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크고 작은 전쟁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고 가족과의 생이별도 경험했다. 근대에는 일제강점기, 6·25전쟁으로 인한 남북분단으로 이산가족이 약 1000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통일부는 남한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이 약 767만명이 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 중 분단을 직접 경험한 이산 1세대는 123만여명, 60대 이상의 고령 이산가족은 69만명으로 파악됐다.
지난 1983년, 대한민국 전역을 눈물바다에 빠뜨렸던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이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당시 1시간 30분가량 방송예정이었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가족을 찾기 위해 여의도 KBS 앞으로 찾아온 사람들 때문에 138일 453시간 45분으로 방송시간이 늘어났다. 10만952건의 사연이 접수됐는데, 이들 중 5만3536건이 방송에 소개돼 1만189건의 상봉이 이뤄졌고 1985년 9월 남북 이산가족 최초 상봉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 후 수차례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지만 이산가족 전체 상봉 신청자 13만여명 중 절반 가까운 6만3921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지난 20년간 만난 사람은 신청자의 3%에 불과하다. 특히 평생을 그리워하며 기다렸던 상봉이지만 단 3일 동안의 만남이 끝나면 생전에 다시 만날 기약도 없다. 삶에는 많은 고통이 수반될 수 있으나 이별 이상 절망적인 상황은 없을 것이다. 특히 가족의 사별보다 생이별이 더 그러하다. 사별은 운명적인 것이어서 체념할 수 있지만 생이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어머니의 체온으로 24시간 등온권(等溫圈)에서 양육되는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등온권의 사람으로부터 떠나가기 싫어하는 이산애수(離散哀愁)가 한국인의 정서로 뿌리깊게 정착돼 있다. 산업화, 핵가족화된 오늘날에도 한국인들은 늘 귀향을 꿈꾼다. 이런 민족에게 60여 년간의 긴 생이별은 죽지 못해 사는 아픔인 것이다. 이산가족의 한맺힌 절규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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