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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에 일대 변화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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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에 일대 변화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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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2.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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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별 노조 산하 지부·지회가 어느 정도 독립성이 있다면 스스로 조직형태를 변경해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단체교섭·협약을 상급단체에 맡기는 지부·지회는 산별노조의 하부조직일 뿐 독립된 노조가 아니어서 이렇게 조직 전환 권리가 없다는 기존 노동법 해석과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산별노조 중심으로 진행된 노동운동에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9일 "기업노조로 전환한 총회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며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지회장과 조합원 등 4명이 발레오전장노조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지부·지회가 산별노조 하부조직이라는 원칙은 인정했다. 그러나 "독자적인 규약과 집행기관을 가지고 독립한 단체로 활동해 근로자단체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경우 조직형태 변경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사용자와 직접 단체교섭·협약을 맺으며 기업노조 수준의 지위를 갖춰야 한다는 기존 판례보다 조직형태 변경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대법원은 "단체교섭·협약을 하지 못하더라도 근로자단체로서 독립적으로 의사를 결정할 능력을 갖췄다면 자주적·민주적 결의를 거쳐 목적이나 조직을 선택하고 변경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발레오만도지회가 이런 독립성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독립된 노조가 아니어서 조직형태 변경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해 심리를 다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따라 그동안 우리 사회의 노동운동을 주도해온 금속노조 등 산별 노조는 이번 판결로 그 위상이나 영향력에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됐다.
1997년 노동관련법 개정으로 개별 기업노조의 산별노조 전환이 가능해진 후 민노총은 산별노조 구축에 온 힘을 쏟아왔다. 산별 노조를 구축하면 사측에 대한 교섭력은 물론 정책적 사안에서 대정부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민노총 산하 69만 명의 조합원 가운데 80%가 금속노조, 전국공무원노조, 전교조, 공공운수노조 등 산별노조 소속인 것은 그동안 민노총의 산별노조 구축 작업을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방증하는 것이다. 산별 노조는 2011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도전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산별노조 탈퇴를 쉽지 않게 한 규약으로 인해 그 근간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갖추면 조직형태 변경이 가능해 지면서 이 근간은 상당 부분 허물어지게 됐다. 금속노조는 이번 판결에 대해 '정치적 해석' 운운하며 반발했다지만, 어찌 보면 이 판결은 그동안의 비타협적이고 지나치게 정치적 색채를 띠어온 노조 운동에 대한 사회적 반발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실제 근로자들의 삶의 질 개선이나 작업 환경의 개선과는 거리가 먼 강경투쟁 일변도의 노조 운동에 대한 반발로 인해 많은 지부나 지회가 개별 기업 노조로의 전환을 꾀하는 추세도 이를 뒷받침한다.
당장 이번 대법 판결의 케이스가 된 자동차부품업체 발레오만도 사건 역시 금속노조의 강경 투쟁으로 직장이 폐쇄되면서 갈등이 장기화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다. 석 달간 직장이 폐쇄되고 임금을 못 받게 된 조합원들이 총회를 개최해 산별노조 탈퇴를 결의했고, 이에 대해 금속노조 산하 지회장 등이 노조 규약 등을 근거로 총회를 통한 개별기업 노조 전환은 불가하다며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회사가 노조파괴 컨설팅 업체와 계약을 맺고 치밀하게 작업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조합원 601명 중 압도적 다수인 550명이 총회에 참석해 97.5%의 찬성으로 안건이 의결된 것은 조합원 대다수가 산별노조의 일방적이고 강경한 투쟁방침으로 인해 자신들의 생계가 어려워지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번 판결이 기존의 강경하고 정치색이 짙은 노조 운동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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