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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정국교(靖國橋)와 ‘야스쿠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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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정국교(靖國橋)와 ‘야스쿠니’ 다리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6.1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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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일본인이 젓가락 쓰니 우리는 젓가락 쓰면 안 된다고? 

초년 기자 시절, ‘때 되면 쓰는 기사’라는 분류의 기사가 있었다. 현충(顯忠)의 6월에 ‘그런 기사’ 보니 감회 새롭다. 언론의 언어(를 이해하는) 수준이 퇴보한 것은 아닌지도 걱정됐다.

“서울현충원에 ‘야스쿠니’ 다리가 있다고?”라는 제목의 서울신문 기사였다. 이미 오래 전에 여러 사람이 써먹던 기사다. 기자동네에선 저런 빤한 기사 쓰는 ‘기자님들’ 때문에 현충원 등 당국이 또 곤혹스럽겠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나눴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도 그런 기사 있더라. 내용, 논지도 비슷하다. 애국의 최고 상징인 국립 현충시설에 ‘야스쿠니’가 웬 말이냐, 따지니 관계기관에서는 ‘이래 저래서 문제없다’고 하더라. 

시비 걸고, 답변 들어 반론도 써주었으니 ’면피‘도 오케이! 그럴까? 저 기사 쓴 기자, 저런 얘기 듣고 ‘꺼리가 된다.’고 신났을까? 그러나 지식에 대한 생각은 겸손해야 한다. 내가 알 정도면 대개는 안다 또는 내가 잘 못 알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자세가 그 하한선이다.

정국교(靖國橋)를 두고 시비를 따졌다. 현충문 바로 옆에 야스쿠니다리가 있으면 어찌 되겠느냐, 일갈(一喝)한 것이다. 

우리말 정국(靖國)의 한자를 일본말로 읽으면 군국(軍國)주의 일본의 충혼(忠魂)을 모았다는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의 ’야스쿠니‘다. 기자는 그 야스쿠니를 ‘정국’으로 읽어 문제 삼았다.

일본인이 밥 먹을 때 젓가락을 쓰니 어찌 우리가 따라 하겠는가, 우리는 젓가락 버리고 숟가락만 쓰자. 이 얘기 같은 ‘주장’이다. 글로 세상을 표현하는 기자 직책이 언어의 구조나 작동원리를 몰각하면 이런 엉뚱한 뜻을 펴게 된다. 세상이, 아이들이 따라 배울까 두렵다.

靖國은 우리 역사에서 일반명사처럼 쓰인 개념이다. (어지럽던)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기 위한 경건한 표현이다. 굳이 되살려 자주 쓸 필요야 있을까마는, 저런 오해의 무지(無知)는 답답하다.  

그림글자 한자는 글자마다 (그림이 바탕인) 뜻이 있다. 그래서 한 글자가 한 단어다. 두 글자 이상은 그 글자들 각각의 뜻을 합친 숙어(熟語)다. 靖은 편안할 ‘정’, 國은 나라 ‘국’이다. 애국(愛國) 순국(殉國·나라 위해 죽음) 매국(賣國·나라 팔아먹음)의 뜻도 함께 새겨보자. 

데스크 선배들로부터 이런 ‘지도’를 혹독하게 받았다. 요즘은 어떤가. 언론의 전통은 말라비틀어진 고목(枯木)이 됐을까? 이제는 그런 주제, 비슷한 기사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 

독자 중 몇몇은 ‘어, 그래 그럼 안 되지...’ 하겠지만, 문자 속과 말뜻 좀 가진 분들은 ‘에이, 저 덜 유식한 기자 선생님들 좀 보게.’하며 혀를 차거나 냉소 보내기 십상이다. 기자로 잔뼈 굵은 이 사람은 무심코 하는 저런 말씀들이 참 부끄럽고 미안하다.

영어도 그렇지만, 널리 쓰이는 현대 언어들은 순수한 혈통을 가지지 않는다. 영어에는 라틴어 불어 독어 등의 어원이 얽혀있다. 우리 ‘김치’도 그들 언어에 편입된 지 오래다. 

대개 아는 것이지만, 영어 철학 방송 신문 영토 보증(保證) 영화(映畫) 따위 우리 주위 많은 개념어들은 일본의 ’작품‘이다. 일본이 서구를 좇아 문물(文物)을 받아들일 때 그 짝으로 지은 한자 어휘를 우리나 중국이 많이 쓰고 있다. 

대단했던 일본이 이제 가난해졌다. 제 핵쓰레기도 못 치워 전 인류에 폐를 끼치려한다. 저런 일본을 우리는 이제는 별로 신경 안 쓴다. 靖國을 야스쿠니로 읽은 것은 왜색(倭色)에 대한 막바지 경계 심리겠다. 시대착오적이지만 아직 잔재(殘滓)가 없지는 않다. 

이런 ‘(문화)심리학’도 언어원리 중 하나다. 언론(인)이 (언어)공부를 하면 세상에 널리 이로우리라. 홍익인간(弘益人間)은 겨레의 깃발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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