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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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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고리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11.08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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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오장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고리
          -김송포作

질긴 인연의 고리를 엮고 살아왔다지
풀려고 안간힘 썼던 시간이 위대해지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지
서러운 것을 풀어놓으면 사슬은 녹이 슬어 쇳가루만 남는다지
단단할수록 연의 고리가 길어진다지
엮이기 싫다면서 죽자 살자 엮이려 한다지
소속이 싫다고 떠나더니 혼자선 살아남을 수 없다지

너와 나의 관계는 유효하다
너와 나의 관계는 무효하다

사슬처럼 엮인 우리는 긴 강물이다 강물은 바다로 들어가기 위한 밑밥이다
바다에서 만날 것이다 오래 잘 건너왔다

고리에 날개를 달고 말이지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시인 이오장 시평]
자연과 사람은 의도하지 않은 끈으로 묶여 있다.
혈연이 아니라도 공동체의 삶은 엉킬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풀려지면 외톨이가 된다.
끈은 원해서 얽힌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으며 하나의 끈은 수많은 끈으로 이어져 뻗어나간다.
고리는 자연의 끈을 옭아맨 인공적인 연결이다.

흐름을 멈추게 하여 끈을 잠시 붙잡는 역할을 한다. 끈을 따라가던 사람이 끈의 멈춤을 만들어 냈으나 고리로 인한 부작용은 의외로 크다.
자연을 벗어난 묶임이기 때문이다.
개인에서 벗어나 단체를 만들고 단체의 규정은 고리가 되어 줄줄이 엮인 상태로 이끌어 간다.

개인관계도 마찬가지다.
특히 애정의 고리가 만들어지면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수렁이 되기도 한다.
"너와 나와의 관계는 유효하다.
너와 나의 관계는 무효하다"라는 김송포 시인의 이분법적 사유가 울림을 준다.
끈은 줄을 따라가면 그만이지만 고리가 된다면 다르다.

어딘가를 끊어야 끈으로 풀려 이어지지만 둥근 형태의 끝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끊으려는 의도와 관계없이 뱅뱅 돌아갈 뿐이다.
처음부터 엮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피해 가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끝없는 개척이지만 혼자서는 가기 어렵다.
누군가와는 함께 해야 목적지에 닿는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고리는 그래서 필요하고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고리는 만들어진다.

시인은 끝맺음으로 고리에 날개를 달았다.
그러나 함께 날지 않는다면 버겁다.
상대의 무게까지 짊어져야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감수하는 것은 그만큼의 사랑의 힘이 있다는 뜻으로 흘러 흘러서 바다에 닿기까지 영원히 고리를 풀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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