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강상헌의 하제별곡] 글 쓰는 인공지능
상태바
[강상헌의 하제별곡] 글 쓰는 인공지능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4.02.06 1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이재명 배현진이 ‘피습범’이냐? 얼빠진 언론이라니... 

오래된 주역(周易)이나 조선 후기 우리 땅에서 태동한 정역(正易)은 ‘변화’라는 세상의 구동원리를 설명한 경전이다. 개벽사상과 맥을 함께 하는 뜻이라 본다. 

역(易)은 바꾼다는 뜻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나 무역(貿易)의 역이다. 쉽다는 뜻으로도 쓴다. 이때는 ‘용이(容易)하다’처럼 [이]로 읽는다. 도마뱀을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습격을 받았을 때 즉 피습 때, 색깔 모양을 바꾸거나, 상처를 쉽게 치유한다는 것이 저런 뜻을 빚었을까? 문자는 갑골문처럼 그림에서 비롯되고, 뜻은 의당 그 그림에서 번져 나온다. 

같은 글자가 지닌 두 뜻이 의미심장하게 어우러진다. 바꾸기가[역] 쉬우니[이] 도마뱀 같은 생명체가 저 스스로를 지키기 용이하리라. 

인간사(人間事) 왜 다르랴? 주역이나 정역의 오래된 큰 뜻은 ‘변화’에 대한 예지(叡智)를 품은 까닭이려니. 통찰이고, 어쩌면 상식이다. 세상은 변하는데 저만 제 자리 맴돌면, 어찌 밥이나 빌어먹을까.

신문이나 방송에서 피습범이라는 기상천외한 ‘언론용어’가 마구 튀어나오는 상황을 보며 고참 언론 동업자로서 참 무참하다. 

문맥(文脈)과 눈치로, ‘피습을 당한’(‘피습한’이나 ‘습격을 당한’이라야 맞다) 이재명 대표나 배현진 의원에게 칼을 들이댔거나 둔기를 내리친 사람을 피습범이라고 한 듯하다.

피습(被襲)과 범인(犯人)을 (각각의 뜻 생각하지 않고) 합친 말이겠다. ‘습격을 당한 범(죄)인’이라면 누구인가? 글자 뜻 따르면, 칼과 돌 맞은 피해자가 범인이구려.

이 고참 기자는 상황을 눈치로 때려잡는다고 치자. ‘인공지능 씨(氏)’는 뭐라고 할까? 당장 “니가 기자냐?’고 호통을 치지 않을까? 독자나 시청자는 뭐라 하실까?

사전(辭典·事典)이나 책, 또 데이터베이스에 담긴 것이면 (거의) 모두 요즘 활황(活況)인 생성형(生成型) 인공지능(AI)의 곳간에 담길 것이다. 그 지식(데이터)을 바탕으로 세상의 모든 물음에 대답한다고 하니, 변화는 놀랍고 빠르다.

‘피습범이 뭐냐?’ AI에게 물었다. ‘범죄 행위를 저지른 사람 중 습격을 한 사람을 가리킨다.’는 답을 내놨다. ‘논리적으로 모순(矛盾) 아니냐?’고 따져 되물었더니, 황당한 답변을 냈다.

‘(AI 자신의) 오해로 혼란을 드려 미안하다.’며 피습은 ‘습격을 당하다’라는 범죄행위의 피해를 의미하기 때문에 ‘피습범’은 습격을 당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했다. 

네이버 클로바X(엑스)와 필자의 ‘대화’다. 그 AI에 따르면, 이재명 대표와 배현진 의원이 하릴없이 피습범이 됐다.  

‘그럼 그렇지, 기계가 뭘 알아!’ 시기상조(時機尙早)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기 보다는, 이 친구(AI)가 금방 (우리보다 훨씬) 영리해질 것임을 이 문답으로 직감한다. 비록 잘못된 답을 내놓기는 했어도, 놀랄 만큼 부지런히 제 생각을 업데이트하고 있는 것을 보아야 한다.

목마른 가축들 얘기,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어쩌고 하는 그 우화(寓話)의 스토리라인에 이 상황을 대입(代入)해본다. 

‘피습범’이란 용어(?)를 만들어 매체에 유통시킨 (일부) 언론인들과 거기에 노출된 우리 대중들은 지금 저 현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까? 언론은 이제 세상의 상황을 표현하는 첫 작업마저 포기하려는 것인가. 변화하는 세상, 끌려갈 테냐 끌고 갈 거냐? 

바꾸는 것이 쉬운 길이다. 易의 이치, 개벽(開闢)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