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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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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6.02.1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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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처녀에게 두 군데서 청혼이 들어왔다. 동쪽 동네 총각은 부자인데 못생겼고, 서쪽 동네 총각은 가난한데 잘생겼다. 부모가 누구를 택할 것인지 묻자 처녀가 고민 끝에 대답한다. "저는 밥은 동쪽에서 먹고, 잠은 서쪽에서 자고 싶어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란 말이 이래서 나왔단다. 욕심이 과하다는 속뜻이 담겼다. 요즘은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닐 때, 혹은 정치 철새를 손가락질할 때 이 말을 쓴다.
그런데 말법 측면에서 처녀의 대답을 되새겨 보자. 여기서 '저는'은 없는 게 훨씬 낫다. 우리말의 특징 중 하나가 때로는 주어를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경우처럼 생략하는 게 더 자연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주어가 없으면 가끔 엉뚱한 것이 주어 행세를 하려고 한다. 이때는 자칫 글이 꼬이기 쉽다. 처녀와 부모 사이에 오갔을 만한 대화를 좀 더 엮어 보자. "한 사람만 골라라. 서쪽 사람한테 시집갈래?" "재산이 없잖아요." 처녀의 답변에서 주어는 '재산'일까. 아니다.
이 답변은 "그 사람은 재산이 없잖아요"를 줄인 것이다. 따라서 주어는 '그 사람'이다. '재산'은 보어이다. "그럼 동쪽 사람은 어떠니?" "그 사람은 쳐다보기도 싫어요." 처녀의 이 대답에도 주어가 감춰져 있다. '그 사람'을 주어로 판단하면 안 된다. 이 표현은 "나는 그 사람은 쳐다보기도 싫어요"를 줄인 것이다. 술어가 '쳐다보기도 싫다'니까 그에 맞춘 주어는 '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목적어이다. 이어지는 부모의 핀잔. "너는 욕심이 많아서 시집을 못 보내겠다." 이 말에서도 주어는 '너'가 아니다. '시집을 못 보낸다'가 전체 술어이므로 그에 맞는 주어는 '우리는' 정도가 돼야 한다. 한데, 생략된 주어 '우리는'을 괄호 속에 넣고 다시 읽어 보자. '너는 ∼우리는'의 흐름이 매우 어색하다. 주술 관계의 호응도가 약한 것이다. "너는 욕심이 많아서 시집을 못 갈 것 같다"로 하든가 "(우리는) 네가 그렇게 욕심이 많으면 시집을 보낼 수 없다"로 하면 자연스럽다.
영원한 동지는 없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 진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객들의 움직임이 사납다. 권력의 향배만을 따라 이동하는 월경(越境)이다. 한때 청와대서 잘나갔던 핵심 비서관은 청와대를 저격하고 있고, 야당 대통령의 금쪽 같던 ‘오른팔’은 야당을 향해 호통치고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모태가 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투신했던 어떤 원로와, 여야 협곡을 넘나들던 한 원로는 훈수정치에 여념이 없다.
이들에게서 검은 고양이도 보이고, 흰 고양이도 보인다. 잘못된 흑묘백묘(黑猫白猫)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생각이니 결국 사리사욕 아닌가. 그 민낯이 뻔뻔하다‘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의 고사는 동쪽 집에서 밥을 먹고 서쪽 집에서 잠을 잔다는 뜻으로, 지조도 없이 이리저리 붙는 처신을 하며 한군데 정착하지 못하는 떠돌이 삶을 말한다.
자기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여기저기 빌붙는 행태를 나타낸다.더불어민주당이 4·13 총선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한 김종인 전 의원은 11, 12대 민정당 전국구, 14대 민자당 전국구, 17대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6공때 보사부장관·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2011년에는 안철수 의원의,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경제 멘토’로 활약했다.새누리당이 김 위원장을 ‘권력과 더불어 36년, 말바꾸기 종결자’ 자료까지 배포했다. 또 노태우 정권의 청와대 경제수석 때 동화은행장으로부터 2억1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전형적인 구시대 부정부패 비리 전력자로 판결났다.
전두환-노태우-김대중계-안철수-박근혜까지의 긴 여정 중에서 한군데에도 정착하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다.박 정부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전 비서관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2012년 대선때 박 캠프-청와대까지 들어가 ‘문서유출 혐의’는 무죄를 받았으나 야당으로 간 것을 정상적인 처신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순신 장군과 치열하게 싸운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다. 가장 미운 사람도,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가장 함께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라고 했다. 얼마나 치열한 애증인가. 적군도, 아군의 존엄함을 칭송하거늘 정쟁에만 골몰하고 있는 정치권의 처신이 가볍기 그지없다. 생살을 부대끼면서 서로 할키는 정치적 행태는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불온한 계보다. 타 동식물들을 희생시켜, 그들로부터 단백질을 약탈해 삶을 연장해온 부끄러운 도륙인 것이다.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다. 자기애에 빠진 떠버리가 되어 실제보다 더 권위 있고 영리한 척한다면 그게 바보다. ‘똑같은’ 정치를 하기 싫다면 ‘똑바로’라도 해야한다. 인간은 누구나 휘청거리고 발을 헛디딘다. 휘청거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는 과정에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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