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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61] 황혼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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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61] 황혼의 사랑
  • 서길원 大記者
  • 승인 2022.10.0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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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박성우 시인(1971년생) 
전북 정읍 출신으로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아내 권지현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부부 시인

<함께 읽기>  ‘해바라기’ 하면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고흐는 ‘해바라기는 빨리 시들기 때문에 그 자취를 붙잡고 싶어 온종일 해바라기만을 그린다’라고 했다. 희망과 활기와 자유를 표상하기에 해바라기의 노란색은 반 고흐가 가장 좋아한 색이었다고 한다.

"사흘이 멀다 하고 / 말동무 하듯 잔소리하러 오는 / 혼자 사는 집 할아버지 웬일인지 조용해졌다" 담 밑에 심은 해바라기가 피긴 했는데  하필 옆집을 향해 피었다. 야속하다. 이왕이면 안채를 향해 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사흘이 멀다하고 찾아 오시던 옆집 할아버지마저 오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랑, 하다 못해 당신 집 향해 핀 해바라기에 대해서도 얘기했으련만...

"야속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여 / 해바라기가 내려다보는 옆집 담을 넘겨다보았다"

화자는 궁금해 옆집 담을 넘겨다본다. 해바라기가 우리 집 아닌 옆집을 향함에 옆집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 역시 예상한 대로다. "처음 보는 할머니와" "옆집 억지쟁이 할아버지가" 마루에 나란히 걸터 앉았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등에 슬몃슬몃 손 포개"는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게 아닌가. "우리 집 해바라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황혼의 두 사람의 수작은 자칫하면 남세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특히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등에 손을 포개는 모습에서 응큼 스러움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시선을 보자. 화자를 향하지 않고 해바라기를 향해 있다, 마치 해바라기에게 두 사람의 사랑이 결실을 이루도록 빌듯이 말이다. 아마도 젊은 화자를 향했다면 남의 눈치를 보며 소문날까 두려워 조마조마했겠지만 해바라기를 향했기에 조금의 삿됨도 끼어들지 못한다. 아직 우리 사회는 홀로 된 나이 든 이들의 사랑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다. 자식들마저 남세스럽다며 소문날까 두려워 하는 현실이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100세 시대' 사는 게 일상화된 현실에서 십 년, 이십 년 혼자 걸음보다 둘이 걷는걸음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고령화 시대 황혼의 사랑,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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