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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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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호미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2.0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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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오장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호미
               - 정창희作

밭 귀퉁이에 주인 없는 호미가
녹슬고 있다
평생 호미와 살면서
한 번도 일어서지 못하고
꼬부리고 앉아 땅만 일궜다
쩍쩍 갈라진 손에 굳은살이 못 박히고
호미도 닳고
어머니 무릎 연골도 닳았다
허리 굽은 호미를
놓으시던 날 풀이 누웠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시인 이오장 시평]
호미는 과학이다. 
흙을 긁고 파고 심고 뽑고 뒤집고 등등 흙을 일구기 위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농기구, 농기구를 떠나 처마에 걸리면 장식품, 토방에 놓이면 경계심, 부엌문 앞에 놓이면 비상용품, 바지랑대에 묶이면 소방용품 일상에 모든 것이 호미로 이뤄졌다. 

요즘 화초 가꾸기에 최고라고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켜 수출품목에 당당히 들어간 호미, 한 손으로 잡아 농사일하는데 효과적인 농기구다. 

호미는 어머니다. 
잘 모르는 사람도 호미를 보면 어머니를 떠올리고 손에 쥐어본다. 
날이 작은 크기에 흙이 묻어 있어 왠지 따듯한 정이 스며들 것 같은 호미는 어머니의 손에서 떠날 줄 몰랐다. 

또 호미는 어머니의 애환이다. 
밭이나 논에서 땡볕에 호미질을 하는 모습은 철든 사람의 가슴에 못이 박힌다. 

콩밭 두렁을 긁어 잔풀은 제거하고 고추 포기마다 흙을 북돋아 줄 때의 모습은 하늘이 구름에 가려도 훤하게 동네를 덮었다. 

정창희 시인은 어머니의 애환과 고행을 호미를 통해 동시에 그려냈다. 

밭 귀퉁이에 덩그렇게 놓여 녹슬어가는 호미가 어머니를 부른다. 

꼬부리고 앉아 흙을 일구던 어머니의 땀방울이 소나기가 되어 온 들녘을 적신다. 

손바닥에 굳은살은 쇠가죽처럼 온 집안을 지키고 무릎 연골은 닳아 삐그덕거리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가시던 날 호미도 눕고 풀도 누웠다. 

아들은 통곡하지도 못한다. 
부르지도 못한다. 
호미의 숨결을 다듬으며 가만히 어머니의 사랑을 그려낸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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