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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험지 출마론' 정치 개혁 마중물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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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험지 출마론' 정치 개혁 마중물되길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11.0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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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새로운 국회 권력지형을 결정할 제22대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권에서 먼저 ‘텃밭’ 중진의원들의 험지 출마론이 부상하면서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험지 출마론’을 쏘아 올린 것은 부산 해운대갑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 하 의원은 최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서울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여당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의 험지 출마론에 불을 붙였다.일단 중진 험지출마론은 ‘텃밭’으로 여겨지는 영남과 강원권, 서울 강남권의 3선 이상 의원과 선거를 이끌 당 지도부가 대상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영남과 강원, 서울 강남 외에도 타 지역에서 4선 이상을 한 의원들은 예외 없이 험지에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 수도권 승리를 위해서는 중진의원들이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스스로 자갈밭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당 지도부와 중진 및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에게 내년 총선 불출마 또는 수도권 지역 험지 출마를 요구했다. 당의 현재 상태를 위기라고 진단한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정말 (윤석열) 대통령을 사랑하면 험지에 나와서 하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라. 사랑하고 지지하면 희생하라는 말”이라고 했다. 파장이 만만찮다.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4역, 대통령과 친한 장제원 이철규 권성동 의원, 3선 이상 중진인 정진석 주호영 의원 등 대상자가 워낙 많아서다. 영남 다선 의원 수도권 출마론,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연임 금지론 등에 대해선 “선거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반대론이 벌써부터 나온다.

이를테면 세대교체, 영호남 물갈이, 주류 퇴장론, 제3지대 신당론 등이다.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쇄신의 바람이 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 공은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먼저 쏘아올렸다. 그는 지난주 당에 ‘지도부·중진·친윤석열계 의원의 총선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를 권고했다. 주말 내내 이를 놓고 당내는 물론 야당까지 술렁거렸다고 한다. 

그만큼 파격적이고 지금 정치권에서 꼭 필요한 걸 지적했기 때문일 것이다. 혁신위는 이에 더해 의원 정원 10% 감축, 불체포특권 포기, 세비 삭감 등도 제안했다. 이번 혁신안은 총선 때 ‘친박 학살’이니 ‘진박 감별’이니 하며 비주류 찍어내기 흑역사가 끊이지 않던 현 여당에서 주류 세력부터 희생하라는 요구를 한 것이어서 더 눈길이 간다. 현 정부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해온 친윤계를 직접 겨냥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면 지도부와 친윤계가 선제적으로 희생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여당이 지난달 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여전히 낮은 데는 당 지도부와 친윤계가 그간 잘못된 국정 운영에 대해 침묵하는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탓이 크다. 대통령과 국민 간 소통의 가교가 되기보다 가림막이 되기도 일쑤였다. 거기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인 위원장 말대로 이들이 정말 ‘대통령을 사랑한다면’ 불출마나 험지 출마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다.그런데, 이 말의 숨은 의미는 "니가 가라, 시베리아"로 읽힌다. “니가 가라, 하와이”의 반대말이다.

2001년 3월 곽경택 감독, 유오성·장동건이 주연한 ‘친구’라는 영화가 있다. 개봉 80일 만에 전국 관객수 800만명을 넘기며, 초대박 흥행을 기록했다. 22년 전 당시 800만 관객이면 지금으로 치면 1700만 관객 정도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흥행작 중 하나다. 이 영화는 많은 명대사를 낳았다. 지금까지도 간혹 회자된다. 명대사 중에 동수(장동건 분)가 준석(유오성 분)에게 한 “니가 가라. 하와이”라는 대사가 있다. 어릴 적 죽마고우였던 동수와 준석은 서로 다른 조직에 들어가게 되면서 적이 됐고, 세력 다툼에 의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되는 상황에 몰린다. 준석은 차마 친구를 죽일 수 없어 동수에게 하와이로 가라고 제안한다.

극 중에서 준석은 동수에게 “하와이로 가라. 거기 좀 가 있으면 안 되겠나? 조금만 세월이 지나모 다 잊고 잘 지낼 수 있을 기다. 준비는 내가 해줄게”라며 잠시 피신할 것을 부탁했다. 이에 동수는 “니가 가라. 하와이”라며 단박에 거부하게 되고, 결국 동수는 준석의 사주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다.최근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가 ‘영남권 중진 수도권 출마’와 ‘동일지역구 3선 초과 연임 금지’에 이어, ‘윤핵관 수도권 출마’를 꺼내들었다. 혁신위가 당 중진과 핵심들에게 내년 총선에서의 ‘험지 출마’를 제안한 것이다. 대다수 중진과 윤핵관들이 ‘니가 가라 험지’라며 혁신위 제안에 반발·거부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상황이 ‘니가 가라 하와이’ 영화 장면 처럼 위태위태하다.

험지출마론은 정치 시나리오에서나 가능한 가설일 뿐 현실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자기희생을 감수한 중진 의원의 험지 출마가 총선 전체 판세에 얼마나 파급력을 주는지도 의문이다. 국민의힘에는 3선 이상 중진이 31명이다. 수도권 출신 5명을 빼면 대부분 영남과 충청, 강원 출신들이다. 이들을 수도권에 내보내도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앞선 선거들이 증명했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 2020년 총선 때 홍준표, 김태호, 권성동 의원은 당에서 수도권 출마를 권고했지만 끝내 거부하고 탈당한 뒤 무소속 출마해 당선됐다.

서초 출신 재선인 이혜훈 전 의원은 동대문을로 가고 TK 출신 김재원 의원은 중랑을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에 3선 이상 중진은 43명으로 이들 중 34명이 수도권에 지역구를 갖고 있다. 이들에게 영남 지역에 출마하라는 것은 험지에 가서 장렬히 산화하라는 얘기다. 민주당에 TK 출신 의원들이 적지 않다. 상주 출신 서영교, 칠곡 출신 전혜숙, 영천 출신 권칠승, 예천 출신 김병주, 대구 출신 조응천, 강선우 의원 등이다.이들에게도 당 일각에서 고향 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동 출신인 이재명 대표의 대구 또는 안동 출마설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이들 의원들이 영남에 출마해 당선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수도권에서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본인과 당에도 도움이 된다. 영남에 지역구를 가진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험지 출마는 정치적 바람몰이 보다 오히려 순수한 개인적 결단으로 성공한 사례가 더 많다. 2016년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의 순천 출마와 민주당 김부겸 후보의 대구 수성갑 출마가 대표적이다. 국민의힘 수도권 중진인 권영세 의원은 최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중진들은 오히려 자신의 지역을 지키는 것이 더 의미 있다. 험지는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는 뜻을 밝혔다.

권 의원의 지적에 실제로 공감하는 목소리가 여야 모두에 훨씬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험지출마론을 계속 제기하는 것은 인위적 물갈이를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현실성도 효율성도 검증되지 않은 험지출마론은 뚱딴지 같은 소리일 뿐이다. 총선 공천을 통해 정치권에 세대교체와 물갈이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런 비과학적인 정치적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시대역행일 뿐이다. 험지출마든 물갈이든 국민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뒷전에 놓은 채 특정인을 겨냥한 바람몰이는 순수하지 못한 정략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 출신 양향자 의원(무소속)은 지난해 12월 ‘사법 리스크’에 직면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해 “사랑한다면 떠나라”고 촉구했지만 이 대표는 지금도 굳건히 버틴다. 그 결과 민주당은 뭘 해도 이 대표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다. 이른바 ‘윤핵관’들이 대통령을 위한다며 그를 에워싼 결과는 소통 단절과 지지율 하락, 당의 위기다. 무엇이 현명한 선택일지 선뜻 말하기 어렵지만 사랑 없이 사심 가득한 선택의 결과가 어떨지는 뻔하다.

여당의 혁신 노력에 비하면 더불어민주당은 요즘 ‘죽은 정당’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김포시 서울 편입 문제를 비롯한 정책 이슈는 물론 국회 쇄신안까지 여당에 계속 끌려다니기만 한다. 민주당이라고 왜 쇄신할 게 없겠는가. 몇 가지만 예를 들어도 친이재명계 당 운영 독주, ‘개혁의 딸’로 대변되는 강성 지지층의 과도한 개입, 호남당 이미지, 돈봉투 사건 등의 퇴행적 관행, 수도권 다선 의원들의 노른자위 지역구 독식 문제 등 뜯어고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를 방치한 채 ‘우린 시스템으로 공천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니 국민을 우롱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러다 혁신은커녕 여당의 국회 쇄신안까지 발목 잡는 역할만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혁신도 때가 있는 법이다. 민주당이 더 늦기 전에 속히 고강도 혁신 열차에 올라타기 바란다. 특권 내려놓기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그동안 숱하게 제기한 사안들이다. 무노동 무임금 공약만 해도 18대 총선 이후 여야 모두 단골로 내놓았는데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됐다.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빈말로 그쳐선 안 될 것이다. 집권당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고 과감한 실천으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물론 의원 특권 내려놓기는 공직선거법 등 법 개정 사안이 대부분인 만큼 민주당도 적극 호응해야 할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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