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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신성한 국방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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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신성한 국방의 의무
  • 이순선 강원 인제군수
  • 승인 2014.07.06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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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6·25라는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의 역사와 분단이라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쓰라린 상처를 안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때문에 국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국가존립의 중대사이다. 따라서 국방의 의무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국민의 의무이며 가장 신성한 국민의 권리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서 이 같은 의무를 담당하고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영광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안락함에 눈먼 나머지 자신에게 찾아 온 뜻 깊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는 안타까운 사례들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 특히 사회의 모범이 돼야할 지도층 인사들의 이기적인 이야기들이 언론을 통해 들려 올 때면 우려스러움을 지나 분노까지 느끼게 한다.고대 로마를 생각해보라. 로마시대는 국가의 최고 덕목이 국방이었고 최고 영예도 국방이었다. 때문에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본국민이든 속주민이든 국방에 참여를 명예롭게 생각했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귀족의 의무는 더욱 엄격했다.이런 국방에 대한 중요함은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중요시 됐다. 인(仁)의 인간의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던 성인인 공자도 교훈을 남겼다. ‘편안함에서 위태로움을 잊어서는 안 되고 존재하면서도 멸망됨을 잊어서는 안 되며 다스림에 있어서도 어지러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으로 몸을 안전케 하고 나라를 보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국방은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국가 존립의 핵심이다. 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국방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한 가문에 대해서 병역명문가라는 영예를 수여하고 있는 가운데 영광스럽게도 필자의 가문이 선정됐다. 참으로 기쁘기가 그지없다. 이제서 국가에서 주는 혜택을 조금이라도 보답을 했다는 자긍심에 가슴이 훈훈해지고 마음이 넉넉하다.특히 춘자 구자를 쓰는 필자의 선친은 1950년 6.25 전쟁중 20살의 나이로 월남을 했다. 개성이 고향인 선친은 남한에 내려 온 후 38선이 그어지고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며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1952년 12월에 군에 입대했다. 정전되고 인제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에 모친을 만났고 그 인연으로 35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가정을 꾸려 인제에 정착했다.집안에 경사가 생기거나 명절이 되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선친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분단의 아픔이 필자의 가문이 짙게 드리워 진 가운데 국방은 가훈 아닌 가훈이 되고야 말았다.때문에 국방의 의무는 필자에게는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고, 생업에 종사하는 것 마냥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다.그러던 가운데 22살이 되던 1978년 징집영장을 받았다. 입대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공무원 동기인 집사람을 만나 한창 연애의 달콤함에 빠져 있을 때라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집사람 집안 역시 군인가문이다. 장인어른 직업군인으로 한 평생을 보내신 분이다. 엄격한 가훈으로 훈육된 집사람은 내게 선친만큼이나 엄격했다. 따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입대했다. 그런 집사람으로 모습에서 적어도 이 사람은 고무신을 거꾸로 신을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섰다. 때문에 마음은 홀가분했다. 못 다한 연애시절의 아쉬움을 뒤로 물리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경기도 연천군에 주둔한 육군 제6군단866포병대대에 자대배치를 받아 군복무를 시작했다. 그런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첫 휴가를 틈타 약혼식을 올리고 서로의 사랑에 대해 책임을 지기로 했다. 34개월 복무를 마치고 결혼식을 올리고 슬하에 한준, 진한이 두 아들을 두고 있다.1981년 전역 후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가운데 필자 가문의 차남인 동생 순교가 입대하게 됐다. 선친은 물론이거니와 필자 역시 기쁜 마음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오길 기원하며 보냈다.동생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입대해 태안군에 주둔해 있던 육군직할 방공포병으로 29개월의 군복무를 마쳤다. 이 부대는 지금 공군산하 예하부대로 재편됐다.그로부터 15년의 시간이 흐른 지난 2001년 필자 집안에는 나라의 보답할 소중한 기회가 다시 왔다. 장남인 한준이가 입대했고 2004년에는 둘째인 진한이가 입대를 했다. 두 녀석 모두 상근 예비역으로 편하게 군복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확고했다. 현역을 복무할 것을 권유했다. 녀석들 역시 집안 내력을 잘 알고 있는 터라 군말 없이 필자의 뜻에 따라 공군에 입대해서 한준이는 중거리 유도무기 발사 운용병으로, 진한이는 제8전투 비행단에서 각각 30개월, 28개월의 복무기간을 마치고 전역했다.이로써 필자 가문의 모든 남자들은 군복무를 마쳤다. 합산해보면 156개월. 꼭 13년이다. 길다고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시간이야말로 필자의 집안을 필자의 집안답게 만들었다는 자긍심을 갖게 하는 소중한 시간들이다.앞으로 필자의 가문이 다시 나라의 부름을 받고 나라를 위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려면 적잖은 세월이 흘러야 할 것이다. 한준이와 진한이가 가정을 꾸리고 건장한 사내아이를 낳아 만20살의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그때가 오면 필자는 자랑스럽게 든든한 손자들의 어깨를 밀어 신병훈련소로 들여보내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게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내 자리에 다시 한준이와 진한이가 서있고 그 다음에는 그 녀석들의 손자들이 그 녀석들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필자의 가문을 병역명문가로 더욱 영예롭게 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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