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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단' 세계에 던진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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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단' 세계에 던진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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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9.0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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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역에 내린 난민들을 처음 맞은 것은 영어와 아랍어, 독일어로 적힌 환영 메시지와 독일 사람들의 박수갈채였다. 오랜 여정에 지친 난민들은 처음엔 오랜만에 받는 환대가 낯선 듯 얼떨떨한 표정이었으나 자원봉사자들이 나눠주는 따뜻한 음료와 음식, 아이들을 위한 인형 등을 받으며 마침내 '꿈의 땅' 독일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일부 난민들은 서툰 영어로 "고맙습니다. 독일", "사랑해요. 독일" 등의 메시지를 적은 판지를 들고 독일인들의 열렬한 환대에 화답했으며, 일부 난민은 벅찬 기쁨에 눈물을 터뜨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사진을 품에 꼭 안고 나온 난민도 있었다.
이날 하루에만 1만명에 가까운 난민이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왔고, 오스트리아에 남은 일부를 제외하고 8천여명이 독일 땅을 밟았다고 NBC 방송은 밝혔다. 이들 상당수는 내전이 심화하는 시리아 등 중동지역에서 온 난민들이다. 이들은 서유럽행 열차를 타기 위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켈레티 기차역에서 며칠을 노숙하다 헝가리 정부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극적으로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었다. 오스트리아 니켈스도르프까지 버스로 넘어온 후 일부는 오스트리아에 남고 대다수는 기차를 타고 독일까지 더 이동해 고단한 여정을 마무리했다. 부다페스트 켈레티역의 차가운 바닥에서 노숙하기 이전에도 이들은 힘든 과정을 겪었다.
터키의 난민 수용소 등에 머물며 유럽 이동 기회를 모색하던 이들은 브로커들에게 돈을 주고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섬에 도착한 뒤 본토 이동을 기다리는 동안 텐트에서 물도 없이 열악한 생활을 해야 했다. 경찰의 봉쇄를 뚫고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로, 다시 세르비아와 헝가리로 국경을 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출발한 지 25일 만에 이날 독일에 도착한 시리아의 호맘 셰하드(37)는 AP통신에 "독일에 도착해 기쁘다. 이곳에서 더 나은 삶을 찾기를 바란다. 어서 일도 하고 싶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세 살배기 시리아 꼬마 난민의 사진 한 장이 세계를 울리고 있다. 에이란 쿠르디는 2일 아침 터키 휴양지 보드룸의 해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빨간색 티셔츠와 청색 반바지 차림으로 해변의 모래에 얼굴을 묻은 에이란의 시신은 난민 문제로 주판알을 튕기고 있던 유럽 국가들에 깊고 무거운 인도주의적 울림을 던졌다. 쿠르드족인 그의 가족은 시리아 북부에서 이슬람국가(IS)를 피해 육로로 터키에 도착한 뒤 다시 그리스로 가려고 소형보트에 몸을 실었는데 배가 뒤집힌 것이다. 두 살 터울의 형과 어머니도 숨졌고, 아버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터키의 도안통신이 찍은 이 사진은 난민에 대한 각국 정부의 이기주의와 냉정함을 질타하는 동시에 난민의 참담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파도에 실려온 시리아 꼬마의 사진이 난민에 대한 유럽의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면 대체 무엇이 바뀌겠는가"라고 개탄했다. 여론이 들끓자 유럽 각국도 난민 문제 해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쿼터를 정해 의무적으로 난민을 분산 수용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국제사회의 주요 일원으로서 도덕적, 인도주의적 의무와 국내의 만만치 않은 비판론 사이에서 외로운 줄타기를 해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로서는 에이란으로부터 짧은 생의 마지막 선물을 받은 셈이다.
에이란의 죽음이 세계인의 도덕과 양심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됐지만 난민 정책은 어느 나라든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는 난제이다. 더구나 유럽의 경우 난민 정책이 단순한 인도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국가 전체의 문제로 격상됐다. 입국하는 난민의 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유럽으로 입국한 난민이 28만명이고 올 들어서는 지금까지 34만명이 넘었다. 최근에는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져 7월 한 달 동안 10만7천500명의 난민이 입국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유입 사태이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유럽 각국에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집단적 용기'를 촉구했지만 국가마다 상황이 제각각인데다 국내에서 난민 수용이 별로 인기있는 정책이 아니어서 말같이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에이란 사진이 상징하는 인도주의적 재앙을 막으려면 난민 발생의 진앙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으로 비교적 형편이 나은 유럽 국가들의 도덕적 의무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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