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김연식 칼럼] 한국의 러스트 벨트
상태바
[김연식 칼럼] 한국의 러스트 벨트
  • 김연식 논설실장
  • 승인 2020.11.09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연식 논설실장

미국 대통령선거가 사상 초유의 접전이 펼쳐진 가운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대결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등 세계 각국에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어떻게 보면 대선구도에 관심을 보인 것이 아니라 트럼프의 재선에 더 깊은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독특한 통치방식과 미국우선주의 보호무역 등으로 세계질서는 지난 4년 동안 대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다자동맹과 우호협력 등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의 상태였으며 동맹국마저 불편하게 할 정도였다. 그런 장본인인 트럼프 대통령이 4년 더 집권하게 되면 세계질서는 또 한 번 예측 불허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 관심이 집중된 것 같다.

미국 대선의 개표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각 주별로 나타난 민심을 파악하기엔 부족함이 없지 않았다. 각 언론에서 액면 그대로 보도하면서 생소한 용어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 러스트 벨트와 선벨트 등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미국 대선에서 러스트 벨트의 표심이 당락의 최대 변수였고, 언론도 러스터 벨트의 개표과정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비록 경제기반이 무너져 부식된 도시의 불명예를 안고 있지만, 이번 미국 대선에서 만큼은 확실한 존재감을 알린 도시들이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는 미국 동북부의 펜실베니아 위스콘신 미시건 인디애나 오하이오 등의 지역을 말한다. 러스트(Rust)는 ‘녹슬다 부식되다’ 등의 뜻으로 직역하면 ‘녹슨 지역’이라는 의미다. 이들 지역은 187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약 100년 동안 미국의 주요 산업을 이끌어 온 핵심지역이었다. 현대 산업의 근간이 된 자동차 철강 기계 석탄 방직 등의 제조업이 호황을 누렸으며 풍부한 일자리로 인구도 집중됐다.

1950년대에는 미국 동북부 9개 주의 고용인원이 미국 전체의 43%를 차지했고, 총생산도 45%를 차지하는 등 미국경제의 심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970년대를 지나 고비용 구조의 제조업이 쇠퇴하자 인구가 줄고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도시는 점차 쇠락해져 갔다.

이곳에 있던 기업들은 캘리포니아 등 서부해안과 휴스턴 애틀랜타 등 남부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동북부 지역의 인구는 점점 감소되고 2000년 기준 러스트 벨트의 인구와 생산품의 부가가치 비중은 27%로 급감했다. 이를 두고 미국에서는 쇠락한 도시의 상징으로 ‘러스트 벨트’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태양이 비치는 지대라는 선벨트(Sun Belt)는 캘리포니아 LA에서 휴스턴 댈러스 애틀랜타 등 미국 서남부지역으로 펼쳐져 현재 미국인구의 40%가 이곳에 거주하고 있을 만큼 인기가 많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1960년대부터 본격 시작됐다. 자본과 자원 기술 등 모든 분야가 부실한 상태에서 시작된 근대화 운동은 많은 국민들의 고통이 뒤따랐다. 춥고 배고픈 시절 그나마 국민들의 안방을 따뜻하게 지켜준 것이 바로 석탄이었다.

석탄산업은 강원도 태백을 중심으로 삼척 정선 영월 등에 집중됐다. 석탄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1980년대 태백의 인구는 13만 명에 육박했고 정선군은 13만2000여 명, 영월군은 9만여 명, 삼척은 도농통합 당시 9만 명에 육박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해 도시는 급속히 쇠락해져 갔다.

태백의 인구는 3분의2가 줄어 현재 4만2000명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영월 정선도 각각 3만 명대 후반을 겨우 지키고 있다. 삼척은 7만 명이 붕괴돼 6만 명대 후반을 유지하고 있다. 태백 삼척 영월 정선 등 4개시군은 현재 ‘폐광지역’이라고 불리며 고속도로 하나 없는 육지속의 섬으로 전락했다. 이들 자치단체는 수 년 전부터 접근도로망 개선을 위해 동서고속도로 조기건설 등을 정부의 요구했으나 아직도 묵묵부답이다.

우리나라 지도를 펼쳐 보면 이 지역의 도로가 얼마나 열악한가를 알 수 있다. 수도권과 영남 충청 호남권 등은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엉켜져 있다. 철도도 KTX와 SRT 등이 잇따라 개통되면서 수도권과 2시간대 이동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시 단위임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 하나 없다는 것은 정부의 무관심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말해 준다.

미국의 러스트 벨트 지역은 이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각종 IT산업과 첨단기술 등이 가미된 새로운 산업기지로 변모하는 중이다. 미국정부의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도 러스트 벨트로 남아 있는 폐광지역에 애정을 보여야 할 때다. 한 때 석탄산업의 메카로 국민의 따뜻한 안방과 에너지원을 공급했던 폐광지역이 이렇게 홀대를 받아서야 되겠는가? 정부는 전략적 접근을 통해 부족한 교통망 개선과 산업시설을 확충하고, 일자리 창출로 폐광지역의 경제 회생에 나서야 한다.

이들 지역이 더 이상 녹슬고 부식된 도시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대통령의 관심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하루빨리 실태를 점검하고 처방전을 내려야 폐광지역이 살 수 있다. 역대 대통령이 하지 못한 일을 문재인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실천해 보기를 강력히 주문해 본다.

 

[전국매일신문] 김연식 논설실장
ys_kim@jeonmae.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