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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전두환의 죽음-사망의 존댓말이 서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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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전두환의 죽음-사망의 존댓말이 서거라고?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11.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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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전두환 씨가 죽었다. 얼마 전에 노태우 씨가 세상을 떴다. 호칭과 함께 논란이 된 주제는 그 죽음을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 ‘죽음의 이름’에 관한 왈가왈부였다. 죽다, 세상 뜨다와 같이 사망, 사거, 서거 등의 몇몇 이름이 올랐다.  

‘명색이 전직 대통령인데’ 하는 입장이 있고, 그런 입장이 마뜩찮은 측도 있다. 일부 언론과 외신은 학살자(虐殺者)라는 타이틀로 전두환을 규정했으니 당연한 논의겠다. 노태우 때는 별세(別世)나 서거 표현도 있었는데, 이번엔 ‘인색하더라’는 언론전문지의 논평도 있었다.

예문 ‘아버님이 진지를 드신다.’에서 아버님은 직접높임말, 진지는 밥의 간접높임말, ‘드신다’는 ‘먹는다’의 객체(客體)높임말이다. 말의 존대는 복잡하다. 호칭이나 죽음의 이름이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전두환이 죽었다.’고 쓰기는 좀 망설여졌던 모양,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서거(逝去)를 사전은 ‘사거(死去)의 높임말’이라고 푼다. 거(去)는 ‘가다’라는 뜻으로 망(亡)처럼 ‘죽어 저 세상으로 갔다.’의 의미다. 옛 그림글자의 去는 사람이 움집에서 나가는 장면, 亡은 날(刃 인)이 망가져 쓸모없는 칼이다. 그럴싸한 은유(메타포)다.

서거와 사거의 逝와 死에는 무슨 차이가 있어서 ‘진지’와 ‘밥’ 같은 사이가 됐을까? 글자 한 획, 점 하나도 다 뜻이 있다. 소리(발음)가 다른 것도 그렇다. 이 대목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한국어 어휘력(語彙力)의 핵심이다. 잠깐 열공!

辶(착, 辵과 같음)은 ‘천천히 간다.’이고 折(절)은 ‘꺾다’의 뜻이다. 목숨 꺾여 찬찬히 저 세상으로 간다, 죽다 망가지다처럼 직설적이지는 않으면서 장중한 느낌을 주지 않는가? 이렇게 두 단어를 합쳐 逝(서)다. 

살펴보니 ‘~을 *이라 한다.’는 것이 새 말 만드는 방법이다. 학문분야 용어나 일상 보편적 단어들의 정체다. 한자는 그림 보듯, 시(詩) 읽듯 그 안에 포함된 은유를 살펴 뜻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조작적정의(操作的定義·operational definition)라는 말로 설명할 수도 있다.

왜놈 군사 피해 왕 선조가 처참하게 도망하는 피란을 몽진(蒙塵)이라 부른다. 먼지(塵)를 뒤집어쓰다(蒙)는 표현이다. 임금님의 황공한 상황에 대한 은유이면서, ‘임금의 도망’은 좀 있어 보이는 이 말을 쓰자고 했던 약속이리다. 조작적정의다. 

사회적 약속이 쌓인 것일 수도 있고, ‘오미크론 변이’처럼 WHO가 긴급히 정할 수도 있다. 나의 ‘가나다’가 모두의 ‘가나다’와 같도록, 최소한 의미의 곡해(曲解)로 인한 오해는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사(死)는 부서진 뼈(歹 알)과 그 곁에서 슬퍼하는 사람(匕 비)을 그린 그림의 도안(design)이다. 匕자는 사람과 비슷한 모양의 간단한 글자를 취한 것이다.

사거나 사망보다 서거나 별세를 높임말이라고 하는 것도 조작적정의의 성격이겠다. 물론 직설적인 것보다 은은한 은유가 점잖고 경건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문제가 또 하나 있다.

연세(年歲)나 춘추(春秋)가 ‘나이의 높임말’이란다. 우리말 ‘나이’가 하릴없이 싸가지 없는 낮춤말이 됐다. 국어당국 국립국어원의 풀이이니 ‘유권해석’인 셈이다. 언어문화의 사대주의다. 그러나 필자는 어른에게도 정성스런 마음으로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여쭌다. 

‘노태우 전두환의 죽음’을 보는 언어(학)적 상상이다. 생각하는 삶이 하제(내일)를 마련한다. 당연한 것은 없다. 묻자, 왜 우리말 ‘죽음’은 안 되고, 한자말 사망 서거 별세라고 해야 하지?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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