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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영부인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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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영부인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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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2.2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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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우리글진흥원 고문

그 ‘영부인’은 영부인(令夫人)의 뜻에 합당한가? 

철수는 흔한 사람이름이지만, ‘물러남’이란 뜻의 일반명사 撤收(철수)도 있다. 영애는 총명하고 예쁜 ‘대장금’의 이영애만 가리키지는 않는다. 남의 딸을 (높여) 부르는 말이 있다. 영식이란 이름도 많다. 그러나 영애(令愛)처럼 남의 아들을 이르는 일반명사 영식(令息)이 있다. 

영부인(令夫人)도 그렇다.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꽤나 의례적(儀禮的)인 말이나, 살인범의 아내나 또는 범죄자인 기혼여성에게 영부인의 호칭을 쓰지는 않는다. 

인사치레에 그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영부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라야 영부인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언어적 자존심’이다. 또 상식이다.

대통령(大統領) 부인이 영부인 아니냐? 이런 질문이 그치지 않는 것은 ‘령’이나 ‘영’이란 말의 뜻을 붙들어주는 그 말의 속뜻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부인’이란 큰 폴더 또는 바구니 안에 ‘대통령 부인’이 들어가는(포함되는), 수학의 집합(集合) 개념으로 보면 된다.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뜻으로 ‘영부인’이라 쓰는 것은 말의 선명도(鮮明度)를 많이 떨어뜨리는 셈이다. 필자처럼 깐깐한 선생은 ‘틀렸다.’고 채점할 사안이다. 정답은 ‘대통령(의) 부인’이지만, 더 존경하고 싶다면 ‘대통령 영부인’도 좋겠다. ‘부인’도 높임의 뜻을 지닌 어휘다.

영부인(領夫人)은 사전에 없다. 제대로 된 단어가 아닌 것이다. 

‘정치’는 사람의 언어마저 비튼다. ‘영부인’이란 말을 못 쓰던 때가 있었다. 한국어에서 일반적이던 개념 영부인(令夫人)이 거의 잊히고 뜻이 헝클어진 이유겠다. 

대통령 아들이라고 ‘영식 박지만 군’, 딸이라고 ‘영애 박근혜 양’이라고 쓰던 때도 있었다. 그 때는 영부인처럼 영식 영애란 말 쓰는 것도 스스로들 피했다. 불문율 같았다. 지금 변화는 있지만, 지금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죄는 ‘괘씸죄’다. 다시 만나기 싫은 몰상식한 세상이다.  

역사에 휘(諱)라는 단어가 있다. 임금의 이름 등 피해야 할 왕실 이름 글자다. 왕조시대의 억눌린 심리가 여태 뼈 속에 유전되고 있는 것인가. 그 굴레, 이제는 벗자. 지성과 양심을 살자.

令(영, 령)의 어원을 살피면, 영부인이란 말, ‘당신을 귀하게 대하는 것’처럼 ‘당신의 부인도 존경의 마음으로 받들겠다.’는 뜻임을 알게 된다. 큰 집에 엄숙하게 앉은 사람이 남에게 뭔가를 시키는 그림을 떠올려보자. 

이 그림(기호)은 오랜 역사 속에서 ‘경건하게 대해야 할 사람이나 규칙’의 뜻으로 발전한다. 만만한 이미지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 그림에 입(口 구)를 더한 그림이 명(命)이다. 입으로 뭔가를 지시하는 것이니, 명령(命令)이란 중요한 단어의 출발점이다.

령(領)은 令에 머리 혈(頁) 글자를 붙여 ‘옷깃’의 뜻이 된다. 옷깃은 저고리를 여미는 부분이니 옷의 중심이며, 비유적으로 (세상을) 통솔한다는 의미로 번졌다. 

개화기 일본이 서양문물을 흡수하면서 프레지던트를 번역할 용어로 대통령(大統領 だいとうりょう daitooryoo)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1881년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프레지던트를 이르는 말로 처음 쓰였다고 전한다. 장교계급에서처럼 령(領)이 신분을 표시하는데 활용된 것이다.

영부인의 令과 대통령의 領이 다른 뜻이며, 엄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해설이 너무 번잡하고 구구했다. 상처 많은 현대사의 언어에서 꼭 고쳐야 할 대목이니, 비난 감수하기로 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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