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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영부인의 자격(2)-女史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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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영부인의 자격(2)-女史의 귀환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12.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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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우리글진흥원 고문

‘꼭 영부인이라 해야 하나. 여사(女史)나 씨(氏)로 하면 되지’ 윤석열 후보의 발언, 이런 뜻이었다. 領夫人이란 생뚱맞은 ‘영부인’(대통령부인)이 원래 말 令夫人(상대방 부인의 존칭) 뜻을 망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발음 같아 헷갈릴까? 언론매체들이 이 글을 인용해 바른 뜻을 알리고는 있으나 일부는 여전히 ‘생뚱 영부인타령’이다. ‘여사나 씨’ 발언도 비슷한 흐름이다. 

영부인이란 말의 과도한 ‘폼’을 (겸손하게) 사양하겠다는 의도로도 들린다. 이렇게 말과 글에 어두우면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다. 주목받는 인물의 발언은 이웃과 후세들에게 자칫 교과서처럼 (옳은 말로) 여겨지기 쉽다. 늘 조심하자.

女史는 고대 중국 여자벼슬의 이름이었다. 비빈(妃嬪) 궁녀 등 많은 여인들의 미모와 몸 상태 등을 체크하여 ‘저 높은 사람’과 동침할 순서를 정하는 일을 했다. 엄청난 권력이었다. 주(周)나라 기록이니 저런 역할의 역사는 길기도 하구나. 

이 관직은 중국 왕조시대가 끝나면서 사라졌다. 청나라 말기 이후에 창녀(娼女) 즉 갈보나 포주(抱主)의 별명으로 그 이름이 쓰였다. 우리 역사 연산군 때 채홍사(採紅使)처럼, 일의 성격이 워낙 비슷해서였겠다. 왜(倭 일본)의 역사에도 저런 역할이 있었나보다. 

명치유신(明治維新)으로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일 때 ‘보통여자’와 비교되는 인텔리 또는 상류층 여자의 뜻 영어 블루스타킹(bluestocking)의 번역어로, 잉글리시를 ‘영어’(英語)로 번역한 것처럼, ‘女史’를 선택했다. 역사 용어를 재활용한 것이다. 

새 문명의 용어에 그들은 신문 언론 기자 과학 철학 지양(止揚) 따위의 새 이름을 붙였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한자로 된 개념어(槪念語)에는 이런 용어가 많다.     

이 명칭은 190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상륙한다. 일본에서 기혼여성의 성씨 뒤에 붙이는 존칭어로 유행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이미지로 쓰이게 됐다. 

몰랐을 땐 그럴싸한 이름이지만 그 속 알면 당황스럽다. 자칫하면 ‘영부인’ 대타로 ‘여사’가 등판할 수도 있겠다. 윤 후보가 당선된다면, 하는 가정에서의 얘기다. 황당하게도 ‘아내 역할만 하겠다.’고 공언(公言)한 김건희 씨의 타이틀이 영부인 대신 여사(女史)가 되는 셈인가. 

서툰 여성운전의 대명사 ‘김 여사’처럼, 저 이름이 얼마나 많은 구설(口舌)과 화제에 오를지 안 봐도 비디오다. ‘안 봐도 비디오’는 불 보듯 확실하다는 뜻과 흡사한 말, 불과 30년 전의 이 유행어도 여사처럼 언어의 역사성을 알려주는 본보기다. 

역사는 무섭다. 뜻을 알고도 女史를 쓴다면, 정신줄이 흔들리거나 느슨한 사람들일 터다. 말과 세상에 관한 고민과 공부를 권하는 까닭이다.

영부인(令夫人)이면, 또 領夫人인들 어떤가? 여사는 뭐 다른가? 글쟁이들 할 짓 없어 노는 말장난 아니냐? 가끔 이런 툴툴거리는 얘기 듣는다. 그러나 말과 글은 사물의 본질을 드러낸다. 나아가 문화(文化)처럼, 미래를 이끄는 동력이다. 뜻의 구분(區分)이 언어(학)의 핵심이다. 

인문학은 언어로 한다. 언어는 문사철(文史哲) 순례길의 첫 계단이다.

해결책은 있다. 女史를 한자 女士의 여사로 바꾸면 좀 낫다. 훈(訓)과 음(音)이 ‘선비 사’인 士는 진지한 공부와 품격 갖춘 이를 가리키는 단어다. 새 말의 조합은 ‘여자 선비’ 뜻이 된다. 

이름 가지려면, 꼭 박사 스펙은 아니더라도, 명실상부한, 걸맞은 자격을 유지(維持)해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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