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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어머니 여성, 모성(母性)의 문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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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어머니 여성, 모성(母性)의 문화학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2.03.1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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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과 취향을 가진 정당이 대통령직을 차지했다. 여성가족부라는 부처가 필요 없으니 없애겠다고 공약한 터라 ‘정치적 여성성’을 비롯한 논쟁이 새 국면을 맞을 터다. 그 바탕의 페미니즘 논쟁이 저런 공약을 부른 것으로 이해한다.

가부장(家父長)으로 표현되는 남성들의 ‘기득권’ 수호 의지가 여러 문제에서 첨예하게 부딪친다. ‘군대도 안 가는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등의 이유를 업은 것이고, 선거 결과 칼자루 쥐었으니 ‘그런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응답할지 세상은 주목한다.  

이런 상황은 ‘여성에게 쓰이는 예산이 물경 무려 얼마이니 나라 살림을 좌지우지하게 두면 아니 된다’는 억지까지 선거 막바지의 전략으로 활용됐다. 아무리 정치가 (막판까지 가는) ‘정치’라지만 그 정치가들은 통렬히 반성함이 옳다.  

크게 보자, 여성은 아기를 분만(分娩)한다. ‘나’처럼 ‘너’도 엄마의 자궁(子宮) 그 생명의 바다를 거쳐 세상을 보았다. 그 바다는 사람에게 우주다. 늙을 때까지 엄마를 그리워하는 본디의 심성 지닌 게 생명이고, 특히 사람이다. 이 본디를 거역하는 자는 싹수없다 지적 받을 터다. 

서양의 언어에서도 ‘바다’는 대개 여성형이다. 동아시아 문자학에서 바다를 이르는 대표적인 단어 海(해)도 여성을 바다로 느끼는 오랜 의식을 담는다.

글자를 풀어 뜯어보면 海는 물 수(氵, 水와 같은 자)와 비녀 꽂은 엄마의 모습 매(每)의 합체다. 엄마는 매일 머리에 비녀를 꽂는다. 每가 매일(每日)처럼 ‘늘’ ‘매번’의 뜻이 된 까닭이다. 엄마 모(母)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여인(女) 양쪽 가슴의 두 꼭지를 그린 그림이다. 

동정녀(童貞女)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젖을 먹이듯 사랑 전하는 그림, 동정녀만큼 신비스런 잉태 전설을 지닌 이집트 여신 이시스가 갓난 아들 태양신 호루스를 안고 있는 그림은 지고(至高)의 미술이자 아름다운 인류학적 상징이다. 불이(不二), 동양과 서양이 어찌 둘이랴.

좋다, 착하다는 뜻 好(호)를 어떤 자들은 남자(-子)가 여자(女-)를, 또는 남자와 여자가 좋아하니 그게 좋은 것이라 키득거린다. 그런 음담패설(淫談悖說) 즐기는 이들, 통렬히 반성하라. 好는 엄마가 자식에게 젖을 물린 그림이다. 갑골문 원본이다. ‘나’와 ‘너’의 본래 모습이다.

성모자상(聖母子像)은 중요한 미술 장르다. 사랑과 자비의 아이콘(icon)이다.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끌어안은 모습을 표현한 서양 미술의 한 형태 피에타상(像)과도 통하는 이미지다.

오죽 생각이 없으면 ‘엄마’인 모성과 그걸 품은 여성을 대결의 상대로, 삿대질 과녁을 삼을까? 팔씨름 주먹다짐이 기껏 인간의 능력인가? 조폭이 리더인가? 그따위 쩨쩨함으로 미래를 일구겠다고? BTS가 성공하는 까닭의 핵심을 일부러 외면하는 것이냐. 참 못났다. 

‘여성’을 섬기는 것이 사람을 섬기는 것임을 정치는 모른다. 결국 ‘아기를 낳(아주)지 말자.’는 생각의 시위(示威)에 맞닥뜨렸다. 파국(破局)이다. 정치가 대책을 내겠단다. 마음 없이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일 여성 없다. 본령(本領)도 실무도 놓친다. 마음의 정치가 필요하다.

산 속에서 길을 잃으면 등마루로 올라야 한다. 전체로서의 세상에 처한 사람(너)의 입지(立地)를 보자는 얘기다. 곰곰 생각한다. 남자가 여자보다 나은지? 다름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우리는 필패(必敗)다. 

여성가족부의 존폐(存廢)나 이름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은 뜻을, 본디를 놓치지 말라.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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