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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더 이상 일본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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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더 이상 일본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 승인 2022.12.2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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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인류평화와 공영을 지향하는 외교통상

일본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들을 폄훼하기 위함은 아니다. 모든 나라에 대한 편견이 없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일본 역시 결코 무시될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타산지석의 긍정적인 대상이 되어주어 왔다. 일본은 19세기 중반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와 서구화에 성공하였고 사회 전반에 걸친 문화・예술・학문・기술 등 그들이 노력하였던 만큼 현재의 기초기반은 단단한 편이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장인의식이 사회전반에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고 이에 대한 집착이 상당한 수준이고 수백 년 된 오래된 상점들인 노포가 즐비하여 이를 전통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는 대단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의 이러한 전통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12세기 가마쿠라 막부정치의 출현과 함께 무사계급이 지배층으로 등장하며 19세기 메이지유신까지 이어졌다. 일본의 정식적인 국가기원은 7세기 아스카문화에서 시작되었고 일본이 현재 과거역사를 왜곡하고 있지만 막부정권 이후 한반도로부터 문화적 영향권에 속했던 일본이 한국과의 문화적 차이를 만드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서구 중심의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흡사한 봉건 영주제도를 700년 동안 유지한 것이었고 현대의 일본이 서구역사의 발전이란 차원에서 의미를 일치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해왔다. 동양의 발달된 서양문명을 이룬 유일한 국가라는 이상한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막부정권은 전통적으로 중상주의를 펼쳤다. 이것은 15~17세기 서구에서 시작된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등의 중상주의 정책에 영향을 받았고 상업을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막부중심의 봉건제도 하에서 일본은 마치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비견되는 세밀한 계급사회를 형성하며 오늘에 이른 다. 섬으로 이루어진 지리적 특성상 외부로부터의 위협에서 통일된 국민정서가 필요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사회계급화는 무인을 중심으로 기능적으로 세분화하고 고도화하였다. 일본에서 수백 년의 전통을 갖는 수많은 노포의 존재는 이러한 사회적 환경을 기반으로 한다. 직업 자체가 계급화 되었고 직업적 횡적이동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권력이 세습되는 것이 당연한 정서이고 평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지금도 철저히 계층화되어 있는 이유이다.

사회가 철저하게 매뉴얼화 되어진 일본사회의 사회시스템은 완벽할 정도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형식화된 갈라파고스적 행태는 역사적 결과임을 알게 된다는 것은 일제침략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역사의 역설을 경험하는 오늘의 모습이 되고 있다. 사회시스템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일본이 타산지석이 되는 이유는 효율성과 자율성에 의한 능동적 자세의 필요이다. 일본인들이 갖는 모습은 막부시대의 유산과 같은 것이며 과한 예의와 친절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능동적 행동의 결여는 사회 전반에 걸친 수동적 문화가 하나의 예의로 자리 잡게 강요되었고 700년 동안의 사무라이 시대 무사들의 잔인한 폭력성이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요즘 일본이 망할 것처럼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전체가 바다에 침몰하고 후지산이 폭발하며 난카이 트러프의 연속되는 지진과 쓰나미로 일본이 사라진다고 한다. 이러한 허무맹랑한 말이 한국인의 마음에 바람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일본의 경제가 쇄약해지고 한국의 기업들이 일본의 기업을 압도한다는 사실들이 여전히 흥분하게 하는 일이 된다. 일제에 대한 일본의 자기부정에 분노하고 정치적으로 혐한을 이용하는 그들의 행태뿐만 아니라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삼으려는 그들의 억지스러운 모습에도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행태는 그들이 갖고 있는 오래된 사회시스템의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제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일본을 판단하고 대처하여야 한다. 모든 외교가 그러하듯 그들은 우리의 동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적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의 정치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내각중심제와 중대선거주제를 선택하고 있는 일본은 1945년 이후 2009년의 짧은 민주당 집권을 제외하면 계속하여 75년 이상을 독주하여 왔다. 중국 1당 독재와 비견되는 일본의 자민당 권력독점은 민주주의의 허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계급사회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에게는 그러한 모습이 없는 것일까? 이는 어떠한 민주주의 사회이든 이러한 모습의 개연성은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서구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정도의 문제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그 중에 제일 우수한 편이라고 자부해도 좋다. 한편으로 우리 국내에 존재하는 친일인사와 일본 내에서 일본의 폐해를 고발하는 양심인사를 비교해 본다면 일본인들이 우리의 친구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이제 한국은 일본이란 존재에 대해 여유로운 자세가 필요하다. 그들이 서구유럽을 철저하게 따라하며 실패한 정책과 사회시스템은 우리의 거울이 되고 있다. 그들의 장단점을 바로 살펴 우리의 바람직한 모습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백제가 한반도를 통일했다면 일본은 현재의 대한민국의 한 부분이었을 수도 있었다. 막부정권 이전 수천 년 동안 우리 역사의 분명한 아류였으며 일본의 지배층을 형성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적 우월성이 아닌 세계보편주의에 기반 한 우리문화의 자긍심은 그들과 비교할 필요가 더 이상 없다.

우리는 우리가 향하는 미래를 향해 걸어가면 그만이다. 때가 이르면 모든 일본의 억지는 사필귀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전의 약소국으로 일본을 따라가야 하는 과거의 경우라면 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일제의 잔재를 지워나가는 것도 중요하고 일본의 만행을 잊지 않기 위한 역사적 자료들을 정리하는 것도 우리의 노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행위가 냉정함과 객관성을 잃지 않아야 하고 적대감과 배타적 감정은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여유로운 자세로 일본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일본과의 당면한 외교문제는 대결적인 구도를 피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정치적 상황은 경제실패와 정책실패의 책임이 집권당인 자민당에 집중되고 있고 폭발하기 직전의 후지산과 같은 처지다. 젊은 층의 정치무관심을 의도적으로 방관하고 지지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인층에 대한 복지예산의 부담은 열악한 재정상황에서도 개선의 여지를 가질 수 없다. 자민당 정권유지를 위한 유일한 수단이 노인층의 지지유지와 혐한이 되고 있는 이유다.

일본의 정치적 변화 없이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없다. 우리의 정당한 요구들이 어린아이의 강짜처럼 그들에게 취급되어지고 여론화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를 관철하고 굴복시켜야 한다는 감정적 대응은 우리에게 사실상의 실익이 없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외교적 홍보를 지속시키고 이를 여성문제의 국제적 연대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또한 강제징용관련 배상판결문제와 관련하여 모든 배・보상 문제는 우리정부가 직접 먼저 해결하고 구상권의 형태로 하여 외교적 숙제로 남겨놓아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제 한국의 국력이 자국민의 피해를 감당하기에 충분한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일본은 우리의 전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일본을 유연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협력해야 할 것은 협력하고 경쟁해야 할 것은 경쟁해야 한다. 우리의 문화적 자긍심은 분명한 우위에 있는 것이고 우리 역사의 자부심이 일제치하의 한순간으로 열등감을 가질 이유도 없는 것이다. 대한독립사의 역사적 사료를 세계문화 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약소민족의 생존을 위한 투쟁에 길잡이가 되는 것도 세계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식민사관으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며 세계보편주의를 향한 우리의 새로운 희망은 새로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우리만의 스스로의 위로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이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일본과 중국은 이를 인정하기 싫은 모양새이다. 그러나 불과 20여 년 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의 과거와 오늘을 생각하면 우리의 지속가능한 국가체제의 완성은 우리에게 여전한 숙제가 되어야 한다. 이제는 우리의 실력으로 우리가 당당히 서야 할 때이다. 우리와 동맹관계에 있다고 해서 강대국의 견제가 경감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할 것이고 강력한 압박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한층 강화된 외교력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일본을 바라보아야 하고 외교적 우위를 갖기 위한 실질적인 힘이 요구되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waterwra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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