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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검은 닭 오계(烏鷄)와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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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검은 닭 오계(烏鷄)와 언어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6.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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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오계와 오골계(烏骨鷄)는, ‘전혀’ 다른 닭이다.   

한끗 차이니 같은 걸로 치자고? 허나 아닌 건 아니다. 오계(烏鷄)와 오골계(烏骨鷄) 얘기다. 최근 한 신문의 ‘신간소개’를 인용한다.

한국에서 사라지는 식재료는 <흔히 오골계로 불리는> 오계가 대표적이다. 이는 논산 연산면의 천연기념물 닭이다. 동의보감은 오계의 머리부터 발톱까지 전부 약재라고 소개했다. ...

조선 제25대 임금 철종의 몸을 회복시켰던 훌륭한 식재료이자 약재인 오계는 1930년대에 해외에서 다른 품종이 대거 수입되며 점차 쇠퇴 중이다.]

중요한 얘기다. 그런데 <흔히 오골계로 불리는>이라는 대목이 문제다. 이는 오계와 오골계가 같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오계는 오골계가 아니다. 다른 품종이니 저 표현은 틀렸다. 

‘오골계’는 1930년대 일본에서 들어온 품종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육종(育種)으로 국내에 여러 갈래로 번진 품종의 하나일 것이다. 바로 저 글 중의 ‘오계를 쇠퇴하게 하는 품종’ 중 하나겠다. 그 오골계는 일본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사실관계에 문제가 있으면 그 책의 신뢰도를 의심하게 된다. 사라져가는 음식에 관한 (걱정도 담은) 얘기라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보았던 것인데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 또 하나, 철종도 잘 드셨겠지만, 설화에 따르면 저 글에는 철종 말고 제19대 숙종 임금이 들어가야 맞다.

외국인 저자가 틀렸거나, 번역자가 잘못 덧붙였거나, 기자가 (자기가 아는 내용을) 보태며 생긴 착오 중 하나일 터. 서술(敍述) 중 그 <흔히 오골계로 불리는>이란 말과 임금님 이름만 바루면 오계에 관한 설명으로 손색없어 보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국가와 논산시가 오계재단과 함께 종(種)의 보존을 위해 힘쓰고 있는 충남 논산시 연산면의 전통품종 오계는 축산업의 ‘종자전쟁’에 대비하는 우리의 비책(祕策)으로 귀하게 여겨지는 닭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온몸이 (눈자위까지) 새까맣다.

(이에 비해) 오골계는 이름에 든 골(骨 뼈)자가 나타내듯 뼈가 검다. 겉모양은 (대개) 하얗다. 외양부터 오계와 오골계는 판이하게 다르다. 천연기념물 지정 사유나 의서(醫書)에 실린 특징 등에서도 다른 점이 또렷하다.

‘오계’를 ‘오골계의 준말’이라고 잘못 풀이한 책도 몇 있다. 기자나 작가 같은 ‘언어종사자’들이 쓰는 컴퓨터 ‘한글’ 프로그램의 낱말 설명 또한 그렇다. 오계와 오골계의 어감 때문에 오해하기 쉬운 점도 지적될 수 있겠다.

게다가 오계의 고기가 익기(益氣) 온중(溫中) 보허(補虛) 양음(養陰) 퇴열(退熱) 익음보허(益陰補虛) 효능의 약재라는 ‘전통지식포털’의 설명이나, 몸에 매우 좋다는 동의보감의 내용을 곡해(曲解)하거나 혼동하여 (오골계) 음식점 등이 잘못된 내용을 써 붙이는 경우도 없지 않다.

오해의 소지나 개연성(蓋然性)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계와 오골계가 같은 것’이라는 뜻인 <흔히 오골계로 불리는 (오계)>라는 말은 얼토당토않다. 이는 <흔히 말레이 인종이라고 불리는 한국 인종>이라고 하는 것과도 같다.

이런 ‘오해’나 ‘곡해’에는 언어적인 문제도 있다. 烏鷄와 烏骨鷄라는 한자로 읽거나, 보는 이들이 저 이름들의 속뜻을 짐작할 수 있으면 생기지 않았을 착오다.

烏鷄의 烏는 ‘까마귀 오’자(字)다. 까마귀가 검다는 데서 烏는 검은 색 흑(黑)자의 대역(代役)으로 늘 쓰인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의 玆도 烏처럼 흑산도(黑山島) 黑자의 대역이다. 오계는 ‘검은 닭’이고, 오골계는 ‘뼈가, 또는 뼈만 검은 닭’이라는 언어적 추리이다. 

개념어나 수입문화의 이름 용어 등은 그것의 속뜻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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