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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자살 예방도 국가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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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자살 예방도 국가의 책무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9.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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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지난 10일 늘어나는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2003년 제정된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하지만 자살예방의 날을 계기로 되돌아본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암울하다. 자살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본다. 만약 자살을 시도하려 하거나 생각해 본 사람이 있다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혼자 세상을 등진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게 된 유가족의 고통은 죽은 이보다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자살예방협회가 지난 2003년 자살예방의 날을 제정해 생명의 소중함과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도 이 같은 연유도 있다. 특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쉽게 삶을 포기하며 주위에 수많은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자살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10만 명당 24.1명으로 OECD 평균 자살률 11.1명의 2배를 넘는 수치다. 2003년 이후 OECD 자살률 부문에서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단 2개 연도(2016, 2017)뿐이라 하니 불명예를 넘어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국내 자살 사망자 수는 총 1만3352명으로, 하루 평균 36.6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남은 유가족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상실감 등으로 일반인보다 우울증 7배, 자살위험은 8.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면, 불안, 분노, 집중력·기억력 저하 등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는 것은 당연하고 유가족 11%는 정신건강 문제로 입원치료를 받았다 하니 내 목숨 하나 버릴 문제는 아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극단적 선택을 막아야 하고 남아있는 유가족에 대한 관심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또 다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사회는 정신 상담을 받아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바꿔야 한다. 대한민국이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확고한 정책적 의지가 선행돼야 한다. 자살문제를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고 관련 예산도 대폭 늘려야 한다. 자살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될 때마다 철저한 예방대책을 강조하지만 투입되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자살의 원인은 연령·소득 등 사회적 요인에 따라 다양한 만큼 상황에 맞는 맞춤형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교사들이 또 목숨을 끊었다. 지난 최근 집에서 발견된 대전의 40대 초등학교 교사가 사망했다. 이 교사는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고소 등으로 인해 지난 4년여간 마음고생이 컸다고 한다. 또 충북 청주의 30대 초등교사도 생을 마감했다. 참담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서울·전북 군산 초등교사, 경기 용인 고등학교 교사에 이어 최근 열흘 새 교사 5명이 숨졌다. 서울 서초구 교사 사망 사건 후 방학을 보내고 2학기 학교 현장에 돌아온 교사들이 극심한 트라우마를 보이는 양상이다. 교사들의 정신건강을 돌볼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정부는 교사들의 우울 증상을 하루빨리 끊어야 한다. 

마음이 병들어가고 있는 교사들의 업무를 중단시키고, 쉴 수 있게 하며,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하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정신건강 돌봄 체계는 정부가 교권보호 대책을 짜고 국회가 조속히 입법을 논의하는 것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더 이상 교사들의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 죽음의 방식에 내재된 속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살을 질병이라 하는 건 재발하고 전염되기 때문이다. ‘베르테르 효과’라 일컫는 전염성은 그렇게 세상을 등진 이들의 심리부검을 통해 실증됐다. 자살 사망자 40%는 주변에 같은 방식으로 숨진 이들이 있었고, 남겨진 유족의 60%는 같은 죽음을 고민한다고 털어놨다. 동료의식을 공유하는 특정 직업군에선 이런 전염성이 증폭될 위험이 크며,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교직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이들의 94%는 사전에 어떤 형태로든 신호를 보냈다. 자신을 말려 달라는, 고통을 이겨내게 도와 달라는 구조 요청이었다. 교사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보냈을 그 신호를 우리 사회는 알아채지 못했다. 학교 현장에 숱하게 누적돼온 자살이란 질병의 원인을 오롯이 교사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떠맡긴 채 방치했고, 그것은 생명 윤리의 위기라는 부메랑이 되어 닥쳐왔다. 생명의 존엄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훼손되지 말아야 할 가치다. 

극단적 선택에 내몰릴 만큼 극단적인 현실을 감내하면서 선생님들이 지켜온 교단을 이제 우리 사회가 함께 지켜가야 한다. 활발한 활동을 하던 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와 마음이 아프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분들이었는데 갑작스런 위기를 가족이나 다른 이들에게 얘기도 못한 채 떠났고 갑자기 배우자와 아빠를 잃은 가족들의 슬픔과 상처가 오래토록 남으리란 생각에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사회가 자살을 나와 상관없는 일로 인식하지 말고 내 이웃과 동료, 가족, 아이들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는지 관심 있게 살펴봤으면 한다. 요즘들어 뉴스 보는 것이 두렵다. 잔인한 가족 살인사건, 연예인의 마약문제,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정책, 청소년들의 학교폭력, 왕따로 인한 자살 등 심란한 사건 사고가 연이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동방예의지국’의 타이틀을 가진 나라다. 또 인성교육을 법으로 제정한 세계 최초의 나라기도 하다. 인성의 중요성을 알고 국가차원에서 법으로 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사회는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인가?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은 자살을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론적 자살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홀로 고립됨으로써 택하게 되는 이기적 자살은 1인 가구가 대세가 된 한국에서 흔히 발견되는 유형이다. 특히 SNS를 통해 자살 충동을 갖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손쉽게 만나 극한적 선택을 한다.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정부, 사회 기관, 의료 기관, 학교 등이 협력해 다양한 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자살 예방을 위한 정책으로 정신건강 지원을 강화하고, 위기상담 전화라인을 운영하며, 자살 관련 데이터 수집 및 분석을 통해 정확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위기상담 및 도움말라인을 운영해야 한다. 지역사회와 학교 등에서도 자살 예방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친구들 간 서로의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프로그램이나 부모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야 한다. 자살은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꾸준하게 여러 분야의 협력이 필요하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의 지적대로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죽음 충동은 그것이 외부를 향할 때 공격성이 되고 자신의 존재를 향하면 자살이 된다고 한다.

해체의 이 시대에 실존들은 스스로 존재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제 삶의 방향도 성공신화의 스펙타클을 부추기고 또 쫓아가기보다는 오히려 비움을 통한 충만함(mindfullness)으로 회귀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스펙타클이란 장관(壯觀)을 말하지만 그 어원대로 허깨비일 뿐이다. 그것만이 죽음충동 뿐 아니라 타자에 대한 공격성을 거둬들인 온전한 존재들의 삶의 길일 것이다. 웃자 그리고 웃기자! 살아있기에 언제라도 이 행복 만들기의 시작이 가능함에 감사하면서…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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