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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문일지십(聞一知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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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문일지십(聞一知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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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0.1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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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이불 被(피) 한 글자로 ‘문자’ 열 개 깨치기

워낙 Ctrl+C와 Ctrl+V에 익숙한 세상이다. 따서 붙이는 그 과정, 따붙이기의 편리함이 말과 글의 뜻을 망가뜨릴 수 있다. 하늘 무너질까 하는 괜한 걱정 기우(杞憂)일까? 말글은 우리 마음의 드러남이니. 게다가 베끼기는 표절(剽竊) 즉 절도 범죄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동(中東)’이라는 이름으로 서양 사람들이 불러온) 지중해 동쪽 지역에서 전쟁이 터졌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다. 

신문 방송 등, 서양 사람들이 붙인 명칭으로는 극동(極東)에 속하는, 우리니라 언론들이 일제히 이 단어를 이렇게 쓰며 요란하게 사태의 진행을 펼쳤다. ‘이스라엘이 피습 당했다.’의 ‘피습(被襲)’과 ‘당했다’가 주목할 대상이다.

문일지십(聞一知十),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미루어 안다.’는 뜻이다. 공자님 논어의 솔루션으로 ‘한 번 돌팔매로 두 마리 새를 잡는다.’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5배 효능일세. 공부는 저렇게 하는 것이 좋을 터. 

처음 보도한 어느 한 매체가 그렇게 썼을까? 거의 모든 미디어가 똑같이 저런 오류(誤謬)를 범하고 있다. 하나 보고 모두 베꼈을까? 

‘피습’은 습격(襲擊)을 당한 것이니 ‘피습 당하다’ 말고 피습했다나 피습됐다가 적절하리라. ‘피해(被害)를 입었다.’를 뜯어보면 저런 오류는 더 실감난다. 

被는 잠잘 때 덮는 이불이다. 옷 의(衣)와 껍질 피(皮)를 합친 글자이니 그림으로 생각하면‘이불’의 뜻과 바로 연결된다. 이불의 ‘덮는다’는 이미지 때문에 (문법적으로) 수동(受動)이라고도 하는 피동(被動)의 의미를 갖게 됐다. 수동태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까?

‘피해를 입다.’는 그래서 하릴없이 ‘해(害)를 입은 것을 입었다.’는 새로운 ‘역전앞’과 ‘처갓집’이 됐다. 크게 어색하다. 소비대중인 언중(言衆)이 아닌 생산자 언론인의 언어로는 ‘틀렸다’고 해야 할 사안인 것이다.

피고(被告·소송 당한 사람) 피소(被訴·제소 당함) 피조(被造·조물주 등에 의해 만들어짐) 피격(被擊) 피살(被殺·살해됨) 피폭(被爆) 피랍(被拉·납치됨) 피의(被疑·의심 받음) 피검(被檢·수사기관에 잡힘) 등 被자 하나로 여러 개 말의 뜻을 명확히 할 수 있다.

접두사(接頭辭)로서의 被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데 유용하다. 명사 앞에 붙여 ‘그것을 당함’의 의미를 더하게 되니 조어(造語)의 유력한 연장이 되는 것이다. 피보험 피압박 피정복 피지배 피착취 등이 그 사례다.

한자는 글자 하나하나가 다 독립된 한 단어다. 둘이나 셋을 합쳐 한 이미지를 만드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단어들의 합체 즉 숙어(熟語 익은말)로 본다. 

고사성어(故事成語)가 대표적이다. ‘대표적’은 代와 表와 的의 세 단어를 합쳐 새 의미를 이룬 것이고, 독립(獨立) 명사(名詞) 경우(境遇) 등은 두 개 단어의 합체다. 

한자의 이런 특성 때문에 ‘하나 들어 열 깨친다.’는 절묘함이 생겨날 수 있었겠다. 그렇게 聞一知十 하려거든 한자를 알아야 한다. 한자가 이루는 한자어는 중국어가 아니라, 오픈(open)이나 파이팅(화이팅)같은 영어 출신 외래어가 그렇듯이, 한국어의 중요한 한 요소다.

문해력이 요즘 화제다. 그 첫 계단은 어휘 즉 낱말의 활용이다. 그 활용의 첫 개념은 비슷한 뜻을 가진 말을 또렷하게 구분해서 각각의 경우에 맞게 쓰는 것이다. 언어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으면 아니 된다. 문일지십의 다른 표현이다. 베끼지 않고 글 쓰는 능력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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