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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다시 ‘뿌리 깊은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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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다시 ‘뿌리 깊은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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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9.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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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문해력 맹탕과 책맹의 AI시대, 한창기의 시선은... 

‘한국문화의 보석’ 한창기 선생 궂긴 지 26년, ‘문해력 절벽의 시대’가 왔다. 마치 기후재앙처럼,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읽으려 하지도 않는 새싹 세대의 상황은 이미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환경이 됐다. 하제(내일)를 어찌 기약하랴. 내일이 있을까? 

인터넷에다, 유튜브도 있으니 굳이 글 읽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려는가. 한자(문자)가 팽(烹)당한 후의 현상이라고 했다. 그것 뿐 일까? 

비행기로 물건을 실어 나른다는 공수(空輸)의 원래 뜻은 스러지고, 산지(産地)에서 빨리 직송한다는 말로 거의 자리 잡았다. 이렇게 일과 물건 즉 사물(事物)의 이름이 본디와 어긋나(게 쓰이)니 그 이름을 적는 기호(글자)에 대한 태도도 허물어지는가. 

한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흘’을 ‘4일’이라고 아는(믿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또 한심하게 바라보는 논의가 많았다. 그러나 막상 이련 현상의 원인 또는 유래(由來)에 관해서는 입을 다문다. 

교육방송에서 문해력 맹탕, 책맹(冊盲) 등의 이름을 붙이고 여러 프로그램을 낸다. 좋아질까? 안 하느니 보담 낫겠지 위안 삼을까? 허나, 거기서 끝이다. 한 때 유행이라 본다. 

모국어인 한국어만큼 영어에도 뛰어났던 서울법대 출신 한창기(1936~1997)의 언어에 대한 색다른 또는 남다른 생각은 잡지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을 빚어냈다. 아름답고도 명료(明瞭)한 말과 글로 당시의 젊은 지성들을 흔들어 깨웠다.

그는 언어에 주목했다. 말과 글에 사물의 본디가 담겼다는, 영국의 논리철학자 비트겐슈타인(1889~1951)을 연상케 하는 생각으로 우리의 여러 상황에 시시비비를 따졌다. 현재의 문맹(文盲) 책맹을 한창기라면 어떻게 볼까? 대부분 지식인들처럼 그러려니 하고 넘길까?

서양학문 리터러시를 공부한 학자들이 그 이론과 방법론으로, 한국어로 생각(활)하는 한국 새싹들의 문맹 책맹 현상을 바루겠다는 시도다. 노력 클지라도 성과가 흡족할까? 한창기도 이 점 질타(叱咤)했으리라, ‘우리의 문해력’이 영어로 만들어진 리터러시(literacy)와 어찌 같을까. 

한창기의 ‘다른 생각’과 ‘새로운 방법’을 다시보자는 모임이 한글날을 즈음해 열린다. 10월 5일, 서울시청자미디어센터(성북미디어문화마루)에서 ‘AI 혁명과 한창기의 한국어’ 주제로 마련되는 학예모임이다. 첫 해는 한창기의 여러 관심 중 ‘한창기의 한국어’에 초점 맞췄다.

오태규(서울대 일본연구소 연구원·전 한겨레 논설실장) 박재복(경동대 교수·문자학) 윤여정(나주문화원장·땅이름연구가) 허영섭(언론인·전 뿌리깊은나무 기자) 황풍년(광주문화재단 대표·사투리연구가) 박인규(전 KBS 피디) 등 언론계 학계 문화계 인사들이 나선다.

배일동 명창이 (죽어가던 것을) 한창기가 살려낸 판소리를 아니리로 풀어낸다. 부산춤꾼 강주미는 대구출신 디자이너 홍미화의 옷을 입고 한창기가 ‘샘이 깊은 물’로 발견한 이 땅의 여신 ‘마고’를 춤춘다. 신세대 가수 이하린의 한창기의 뜻을 생각하는 노래도 흐른다. 

주최 측 아시아인문재단 김성종 이사장은 “‘한창기 위인전’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 인문(학)의 본디를 향한 그의 마음과 특출한 방법론에서 새 시대 맞을 영감을 모색하자는 것이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문맹, 남이 베낀 것을 다시 베끼는 편리하기 짝이 없는 ‘지식의 방법’이 만난 결론적 국면이다. 이를 부모가, 교사가 자식에게 제자에게 가르친다니... 문맹의 처참을 짓는 공부, 이 혼탁(混濁)은 어서 맑혀야 한다. 못 하면 AI에게 먹히리라.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특별공지] 故 한창기 선생의 ‘다른 생각’과 ‘새로운 방법’을 다시보자는 ‘뿌리깊은나무 문예모임’을 10월 5일 서울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 계획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명년으로 연기한다고 주최 측이 알려 왔습니다. 모임의 내용에는 변동이 없답니다. 일정을 확인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 ‘강상헌의 하제별곡’ 필자 강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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