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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90] 전두환씨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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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90] 전두환씨의 쾌유를 빈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8.08.2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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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혹시나 그가 다음 공판에 나온다면 우리는 그가 열연하는 ‘치매 걸린 노인네’라는 한 편의 연극을 보게 될 런지도 모르겠다.-
 
 
 
전두환(전 대통령)씨의 쾌유를 빈다. 지면을 통해 특정인의 병이 쾌차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쾌유가 개인을 넘어 한 나라의 비극적 역사와 관련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론 개인 당사자 역시 수명이 끝나기 전에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도 없지는 않다.
 
전두환씨가 기억상실증, 즉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의 부인 이순자씨가 재판정에 ‘전 씨가 나올 수 없다’며 밝힌 이유다. 전 씨가 그 전부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하도 재판을 연기해 왔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아무튼 그는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이유로 지난 27일 예정된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이 씨는 재판을 하루 앞둔 지난 26일, 전 청와대 비서관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2013년 검찰이 자택 압수수색을 벌이고 일가친척, 친지들의 재산을 압류하는 소동을 겪은 뒤 한동안 말을 잃고 기억상실증을 앓았다”며 “90세를 바라보는 고령 때문인지 근간에는 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방금 전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한 때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공개된 장소에 불려 나와 앞뒤도 맞지 않는 말을 되풀이 하고, 동문서답하는 모습을 국민도 원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고.
 
어쩌면 전 씨는 오래전부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상적 사고를 갖고 있었다면 특수부대를 동원, 어떻게 국민들을 적으로 생각, 학살할 수 있었으며 그의 손에 뭍은 피를 보고 북한의 지령이라고 둘러댈 수 있었겠는가. 하기야 부정하게 모은 추악한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자 그 유명한 ‘29만원밖에 없다’며 아직까지 버티고 있으니 그의 기억상실증은 희망의 고질병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검찰의 압수수색과 재산 압류 ‘소동’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변명은 너무 심하다.

신군부의 명령을 받은 공수부대가 ‘화려한 휴가’를 나와 마치 사냥하듯 학살한 희생자와 그 유가족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좀 더 차원 높은 변명을 달았어야 한다. 기껏 그 정도의 ‘소동’으로 충격을 받아 제정신이 아니게 됐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시위현장에서 희생된 영령들은 말도 하지 않겠다. 그럼 저수지에서 멱 감다 공수부대의 M16자동소총에 희생된 중학생이며 헌혈하러 가다 희생된 여고생, 대학생으로 보여 젊다는 이유로 끌려가 사살된 젊은이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누이가 지금도 두 눈 부릅뜨고 있는데, 압수수색과 재산압류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다 라는 말은 망발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씨는 그의 남편이 재판정에 나갈 수 없다며 ‘90 고령’과 ‘한 때 이 나라의 대통령’을 들었다. 참으로 그 뻔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한 때 대통령’까지 했던 사람의 뒷  모습 치고는 그 구차함이 역겨울 뿐이다.

물론 국민들의 동정심을 사보겠다는 얕은 수작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 대통령까지 했으면 좀 당당해질 수 없느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더구나 90고령이면 남은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나이다. 그러기에 하루라도 더 지나기 전에 역사의 진실규명에 협력하는 것이 남은 삶을 정리하는 길이기도 하다. ‘90 고령의 늙은이기에 봐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내일 모레를 기약할 수 없기에 더 빨리 역사의 재판정에 서서 심판을 받겠다’고 해야 한다.

전 씨는 ‘정신이 혼미한, 치매 걸린 늙은이’를 자처하면서도 회고록을 통해서는 5·18 학살을 부정했다. 그는 더욱이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회고록에서 ‘가면을 쓴 사탄’이라거나 ‘성직자라는 신분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썼다가 유족으로부터 고소당해 재판에 부쳐졌었다.

그런 그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재판을 회피하다 이번에도 ‘알츠하이머병’이라고 우기며 재판정에 서기를 거부하고 있다.
 
재판부는 다시 ‘오는 10월1일 나오라’고 했다. 전 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지를 확인해보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전 씨가 다음 공판 일에는 또 무슨 핑계를 댈지 모르지만 나온다면 재판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하다. 혹시나 그가 다음 공판에 나온다면 우리는 그가 열연하는 ‘치매 걸린 노인네’라는 한 편의 연극을 보게 될 런지도 모르겠다.
 
전 씨는 그의 부인의 말처럼 ‘한 때 대통령’이었다. 비록 최종 계급이 이등병이지만 그 이전에는 장군이기도 했다. 더 늦기 전에 역사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가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내란 수괴이자 내란목적 살인자(대법원 판결)인 그의 쾌유를 비는 이유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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