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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부보훈지청 기고) 3 ․ 1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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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부보훈지청 기고) 3 ․ 1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며
  • 승인 2017.02.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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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과 한정구

 

 

올해도 어김없이 봄의 문턱에서 나라를 위해 목이 터져라 외쳤던 애국선열들의 함

 

성이 어린 3.1절을 만나게 된다. 올해는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지 98해째가 되는 해이다. 대한민국에게 3.1운동은 어떤 의미일까?

 

 

3.1운동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을 짓눌렀던 일본의 폭압적 식민지배에 저항해 일어났다. 당시 종교계와 학생들을 주축으로 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고 독립통고서를 조선총독부에 전달한 민족 대표들은 스스로 체포되었다. 이 일이 있기 전 은밀하게 독립을 추진하던 고종황제가 1919년 1월 22일 갑자기 승하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일본이 고종황재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3.1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평화적으로 진행된 3.1운동의 물결은 전국적인 파도를 이루었다. 하지만 일제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그들은 화성 제암리 ․ 천안 아우내 ․ 정주 곽산 ․ 남원 광한루 ․ 익산 이리 등 전국 각지에서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는 등 학살을 저질렀다. 또한 체포한 시위가담자들에 대한 가혹한 고문을 서슴치 않아 3.1운동 이후 3개월 동안의 시위 진압과정에서 7천여 명이 사망하고 1만5천여 명이 상해를 입었으며 구금된 사람만 4만6천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소각된 교회 ․ 학교 ․ 민가가 약 7백여곳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3.1운동은 일제에게도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대한민국에 대한 식민통치의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비록 본질적인 방향은 다르지 않았지만 3.1만세운동 후 이전의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바꾸는 등의 변화를 꾀한 것이다. 또한 3.1운동은 제국 열강의 식민통치에 신음하던 국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는데 중국의 5․4운동과 인도의 비폭력․불복종운동, 터키의 민족운동 등 아시아와 중동 지역 민족운동들이 큰 영향을 받았다.

 

3.1운동은 민족의 독립을 완전히 성취하지 못하고 미완으로 끝났지만 많은 민중들에게 민족적 정기를 불어넣었으며 대한독립운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1919년 9월 상해에서 신헌법과 신내각을 공포하면서 탄생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전까지 전근대적 왕권 국가였던 조선이 국민들의 힘과 열망에 의해 대한민국으로 다시 태어나는 결실을 맺었다.

 

1945년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독립을 쟁취했지만 최근 우경화의 극한으로 달리는 일본과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우리의 자주 독립이 결코 안일한 자세로는 유지될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98년전 우리의 선조들은 암울했던 시기 3.1운동을 기치를 들어 올리며 후세를 위한 독립의 초석을 다졌다. 이제는 우리가 선조들의 희생과 헌신에 어떻게 보답하고 우리의 후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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