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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근본적 개선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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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근본적 개선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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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0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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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과 단체를 사찰·검열하고 지원에서 배제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제 피해자가 9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가진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결과 종합 발표' 기자회견에서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본 문화예술인이 8천931명, 단체는 342개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2008년 사찰·검열을 위해 청와대에서 작성한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부터 2015년 시국선언명단, 2016년 청와대 정무리스트까지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여 동안 작성된 9종의 블랙리스트 문건을 조사한 결과다. 진상조사위가 조사 과정에서 파악한 각종 시국선언 명단을 포함한 블랙리스트 관리 명단 규모는 총 2만1362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중복을 제외한 사찰·검열, 지원배제가 이뤄진 문화예술계 피해자·단체만 9273명(개·8931명+342개)이다. 장르별 피해자를 보면 영화가 2468명으로 가장 많고, 문학 1707명, 공연 1593명, 시각예술 824명, 전통예술 762명, 음악 574명, 방송 313명 순이다. 진상조사위는 작년 9월부터 직권사건 조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44건(신청조사 112건·직권조사 32건)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작년 11월까지 받은 전체 조사 신청은 175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112건을 조사했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청와대는 검열과 지원 배제를 주도했고, 국가정보원도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국정원의 성향 검증에 기초해 예술단체나 유명 문화예술인들을 사찰ㆍ검열하고 지원에서 배제하는 방식을 취했으며, 박근혜 정부 때는 청와대가 국정원, 문체부와 긴밀하게 협조해 공모사업의 심사제도나 심사위원 선정 방식을 변경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구체적으로 세월호 시국선언 등에 참여한 문인들의 해외 파견을 불허한 사건, 좌 편향 등을 이유로 국립극단에 특정 작품의 공연을 배제하도록 지시한 사건, 창비 등 특정 출판사와 문인에 대한 지원을 배제한 사건 등 형태도 다양하다.


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문체부 내의 예술지원부서와 소속기관 사이의 위계적이고 비효율적인 직렬구조를 지적했다. 재발방지를 위해 이들 부서를 폐지하고, 국가인권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처럼 법적으로 독립된 '국가예술위원회'(가칭)를 설립해 문화예술정책을 전담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예술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상설기구로 대통령 직속 '문화예술인 표현의 자유 및 권리 보장 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설립 목적을 분명히 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여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기구를 만들기 이전에 생각해야 할 것은 문화예술의 자율성과 정치적 독립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사단법인 형태의 민간기구이다. 이와는 별도로 문화예술정책을 마련할 정부기구를 만들 경우 자칫 정치권력의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다. 이 경우 예술이 추구하는 창의성과 자율성이 제약받게 된다. 블랙리스트로 인해 우리 문화예술계는 자율성과 다양성이 침해받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예술지원의 공공성에 대한 신뢰도 손상됐다. 이를 치유하고 이러한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주는 것은 헌법의 평등 원칙에 반하고 문화기본법이 규정하는 '문화ㆍ표현 활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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