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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79] 시간은 잊음과 벗어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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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79] 시간은 잊음과 벗어남이다
  • 서길원 大記者
  • 승인 2024.03.2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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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나태주 시인(1945년생)
충남 서천 출신으로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함께 읽기] 시계가 늦게 간다고 느낄 때와 빠르게 간다고 느낄 때가 있다. 군대나 감옥처럼 폐쇄된 공간에 머무는 이에겐 시계가 느리게 돌아간다.
거꾸로 주름살과 흰 머리카락이 하나둘 늘어날 때는 또 시계가 빨리 흐른다고 애꿎은 시계를 원망하기도 한다.
아마 나태주 시인도 그래 ‘천천히 가는 시계’를 떠올렸을 게다. 다만 천천히 가는 시계의 개념은 다르지만.

"천천히, 천천히 가는 / 시계를 하나 가지고 싶다" 천천히 천천히 가는 시계는 수탉이나 뻐꾸기나 부엉이 등 “새의 울음소리로만 돌아가는 시계”를 가리킨다. 사람의 시간이 아니라 날 짐승의 시간, 즉 자연의 시간. 자연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다르다. 울고 싶을 때 울고, 먹고 싶을 때 먹으니까.
"꽃의 향기로만 돌아가는 시계" 새의 울음소리로만 돌아가는 시계에 이어 꽃의 향기로만 돌아가는 시계도 있다. 참 이쁜 표현이다. 이제 얼마 안 있어 봄 꽃의 향연이 시작되면 꽃 속에 파묻혀 시간을 잊고 살게 된다. 꽃의 시간은 잊음과 벗어남의 시간이다.

"나도 인제는, 천천히 돌아가는 / 시계 하나쯤 내 몸 속에 / 기르고 싶다."

이제는 시간에 매인 삶이 아니라 내가 시간을 만들어 가는 삶에 빠지고 싶다.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함이 아니라, 내가 해냈을 때가 언제 인가를 알면 되는 그런 시간. 오늘 못하면 내일 하고, 내일 못하면 다음 날 하면 되는, 왜 우리는 그동안 시간의 노예인 양 그리도 바쁘게 살아왔을까?

시인은 '새의 울음소리로만 돌아가는 시간'과 ‘꽃의 향기로만 돌아가는 시간’을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다.

낮 하늘에 해가 떠있고 밤하늘에 달이 떠있음을 번연히 알면서도 모르고 지나쳐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려고...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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