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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우리사회에 희망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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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우리사회에 희망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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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2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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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뒤 덮고있는 상황에서 이웃들을 대피시키다 목숨을 잃은 한 청년의 살신성인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안치범씨(28)는 지난 9일 자신이 살던 마포구 서교동의 한 원룸 건물에서 불이 나자 먼저 대피해 신고를 한 뒤 다시 건물에 들어가 초인종을 누르고 소리를 질러 이웃들을 대피시켰다. 경찰이 확보한 건물 앞 CCTV 영상을 보면 안씨는 오전 4시 20분께 밖으로 나와 3층에 불이난 것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건물로 들어갔다. 그의 방에는 이 건물에서 가장 큰 발코니가 있다고 한다. 만약 안씨가 중요한 물건을 챙기려고 자신의 방으로 향한 것이었다면 지금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안씨가 향한 곳은 3층의 불이 난 방이었다. 그는 이 방 문을 두드리며 "나오세요! 나오세요!" 하고 외친 것으로 보인다. 5층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소방대원에게 발견된 안씨는 손에 화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소지품은 없었다. 주민들은 안씨가 외치는 소리에 잠에서 깨 대피할 수 있었다. 한 주민은 안씨가 초인종을 눌러준 덕분에 방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4층에 사는 주민 오정환씨(37)는 "대피한 다른 주민 중에 내 방 초인종을 눌렀다는 사람이 없다"면서 "안씨가 초인종을 눌렀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렇게 이웃들을 화마에서 구해낸 안씨 자신은 정작 연기에 질식, 병원으로 옮겨져 사경을 헤매다 10여 일만인 20일 새벽 끝내 숨을 거뒀다. 안씨는 평소 집에서 과묵하고 말이 없는 아들이었다. 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안씨는 성우 시험 준비에 매진하기 위해 화재 발생 불과 두 달 전 집에서 멀지 않은 같은 마포구에 원룸을 구해 따로 지내왔다.
그는 집안에서는 말수가 적었지만, 바깥에 나가서는 장애인 봉사활동을 하는 등 활발히 선행을 해왔다고 한다. 어머니 정혜경씨는 "아들이 워낙 말이 없어 잘 몰랐는데 병원에 찾아온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같이 봉사활동을 했다고 말해줘서 비로소 알았다"고 했다. 정씨는 불이 나기 며칠 전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들에게 "위급한 상황엔 너도 빨리 대피하라"고 말하자 "그렇게 살면 안된다.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정색하던 안씨가 눈에 선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안씨의 매형(34)도 "처음에는 솔직히 빨리 화재 신고를 한 것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다시 건물에 들어간 처남이 원망스러웠다"면서 "너무 안타깝고 슬프지만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떠난 처남이 지금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정씨는 "많은 시민분이 함께 슬퍼해 줘 힘이 난다. 아들이 이웃들을 살리고 떠났다는 것을 기억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면서 아들의 이야기가 실린 신문을 꼭 쥐고는 또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목숨이 위태로운 절박한 상황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의를 위해 투신한 평범한 청년의 용기를 보면서 아직은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머니 정씨는 "많은 시민분이 함께 슬퍼해 줘 힘이 난다. 아들이 이웃들을 살리고 떠났다는 것을 기억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모두 안씨의 의로운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보고 더불어 사는 세상의 가치를 재확인했으면 한다. 그와 아울러 의사자 지정을 비롯해 안씨의 높은 뜻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방안에 관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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