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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윤리적으로 거듭나는 계기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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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윤리적으로 거듭나는 계기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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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0.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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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범신과 시인 박진성에 이어 서울의 한 미술관 큐레이터도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며 인터넷상으로 사과했다. 최근 문단 일각에서 제기된 성추행 논란이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 따르면 자신이 예술대학을 다니며 작업하고 있는 21세라고 밝힌 'Soma Kim'은 지난 21일 "지난해 11~12월께 큐레이터 A씨에게 성추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SNS를 통해 연락한 이 큐레이터가 작업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해 만난 뒤 차에서 "손을 잡고 다리, 어깨 등을 만졌다"는 것이다.
이 글이 올라온 다음날인 22일에는 다른 피해자가 "Soma Kim 님의 트위터를 보고 이야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일민미술관 함영준 책임큐레이터의 실명을 적시하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이 피해자는 트위터에 '이제는'이라는 계정을 열고 "나도 함영준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라면서 성추행을 당한 과거 경험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그가 페미니스트라고 동아일보에 기고했을 때 정말 기가 찼다"고 말했다. 피해 여성들의 잇단 폭로에 온라인에서 논란이 확산되자 함 씨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미술계 내에서 저의 지위와 권력을 엄밀히 인식하지 못하고, 특히 여성 작가를 만나는 일에 있어 부주의했음을 인정한다"면서 "신체 접촉이 이루어진 부분에 대해 깊이 사죄하고 후회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면서 "제가 가진 모든 직위를 정리하겠다. 현재 저와 진행중인 모든 프로젝트를 최대한 빨리 정리한 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성추문 피해 사실이 공개된 데 대해 박범신씨는 "나이 많은 내 잘못이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개인적인 사과 표명 수준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창작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문인이나 예술가는 문화 권력자로 불린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 피해자들이 공개한 내용을 보면 문인 등의 부적절한 행태가 문화계에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번 파문은 김현 시인이 지난달 한 문예지에서 문단의 만연한 여성 혐오나 성폭력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선 이후 불거졌다. 편집자나 작가 등 주변 인사들을 상대로 한 부도덕한 행각은 파렴치한 '갑질'과 다를 바 없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문단과 예술계 내부의 깊은 자성과 비뚤어진 성문화에 대한 척결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문화계의 풍토는 한 사회의 지적, 도덕적, 정신적 위상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사고와 행동 방식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일이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대표적 문학단체인 한국작가회의는 이번 파문과 관련해 긴급 모임을 갖는다는 소식이다. 성추문의 당사자인 박 시인도 작가회의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엄정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이 우선이다. 일각에선 무분별한 폭로로 예술 행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는 모양인데 성추문 사안의 폐해와 심각성을 간과한 듯하다. 개인적 일탈에 불과할 수 있다는 등의 해명 따위를 내놓아선 안 된다. 시인 박씨의 시집을 낸 문학과지성사는 "참담한 마음으로 유감을 표명한다. 사실을 확인해 사회적 정의와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말로만 그칠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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