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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한강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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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한강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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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9.0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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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한강(漢江)은 한반도 중부에 위치한 서울을 관통하는 강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을 이르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곳이다. 내가 태어난 김포 아라뱃길도 이 한강과 맞닿아 있다.

옛날의 한강을 떠올리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김소월의 시가 실감 난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가 그랬다. 노래 가사처럼 내가 살던 동네의 한강에는 금모래가 하얗게 깔렸고, 강섶에는 갈댓잎이 사철 바스락거렸다.

물 건너 고양시의 산과 강변의 집들, 강둑의 포플러 나무들이 강물에 거꾸로 비치고, 강변의 회벽 칠한 교회의 덩그렁 종소리가 강물 위를 은은하게 건너왔다. 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물이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며 소리 없이 흐르는 강 위에 고기잡이배들은 졸고 있는 것처럼 미동도 않고 있었다.

강둑에 앉아서 보고 있노라면 호밀밭 너머로 보이는 강물 위로 흰 돛과 붉은 돛을 단 배들이 바람을 가득 안고 행주산성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친구들은 황포 돛을 단배가 지나가면 빨간 배요, 흰 광목천 돛을 단 배가 지나가면 하얀 배 지나간다고 말했다.

지금은 강 옆으로 제방도로가 개통되어 자동차들이 줄을 잇고 달리는데, 내가 어렸던 그때는 사람들이 다녔던 흔적과 마차 바퀴자국으로 패인 길만이 가르마처럼 제방위에 길게 그어져 있었다. 둑 위에 소들이 배설해 놓은 쇠똥 옆으로 경단처럼 만들어져 봉긋이 솟은 곳을 파보면 까만 쇠똥구리가 있었다. 그것을 잡아서 장난감으로 놀고는 했다.

둑을 내려가면 우리들 키의 두 배나 큰 호밀이 바람에 가는 허리를 내맡긴 채로 흐늘거렸다. 우리는 호밀밭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숨바꼭질을 했다. 호밀밭 고랑에서는 알을 품고 있던 종달새가 인기척에 놀라 하늘로 솟아오르며 슬프게 울어댔다. 옆의 감자밭에는 감자꽃 색을 띤 나비가 조개껍데기 벌린 것과 흡사한 모양으로 날갯짓을 하며 날아다녔다.

강변의 아름드리 포플러 밑에다 옷을 벗어 놓고는 그릇 하나씩을 들고 강으로 조개를 잡으러 갔다. 갈댓잎이 부스럭거리는 갈대숲을 지나서 썰물로 금모래가 드러나며 모래밭에서 잡는 조개는 어른 손톱만큼이나 컸다. 흙탕물도 일어나지 않는 모래밭물은 가랑이 사이로 노란 조개를 비추어 주기도 했고, 우리들은 그물을 떠서 먹기도 했다.

조개잡이보다도 물장난이 더 좋아서 연신 첨벙대며 물장구를 쳤다. 한참 놀다가 입술이 새파래져서야 나와 옥수숫대를 하나씩 비틀어 꺾어서 단물을 빨아먹고는 했다. 좀 커서는 썰물 때 드러나는 모래섬까지 건너갈 수 있는 수영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서 목숨을 담보로 무모한 짓을 하기도 했다. 강 가운데 커다란 무인도가 있었다. 가까이 보이기는 했지만 거리가 약 1킬로미터는 되었다. 그 섬까지 수영으로 몇몇 친구는 건너다녔다. 그 친구들은 모두 훗날 해병대를 나왔다. 무적 해병을 만든 무인도다.

무인도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은 족히 두 시간 정도는 걸렸다. 그 섬에 갔다 온 사람들의 말로는 오리알이며 온갖 철새알들이 바닥에 하얗게 깔려있어 발걸음조차 떼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 섬에는 노루도 뛰어다니며 그야말로 야생 천국이었다.

기다리던 여름방학 때 우리들은 강가에 있던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밀물에 섞여 밀려오는 고기떼를 보고 무척이나 놀랐다. 고기는 물속으로만 다니는 줄 알았는데, 팔뚝만 한 고기가 물을 차며 날아오르는 것이 장관을 넘어 겁이 났다. 바다에 살던 연어가 알라스카로 돌아오는 것을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아마 그 정도쯤은 되는 것 같았다.

무인도는 없어진 지 오래됐다. 강 상류로 댐이 생기고 모래 유입도 적어져서 강바닥에는 시커먼 뻘 흙이 쌓였고, 강물은 혼탁해졌다. 요즘 한강에는 예전보다 물이 맑아져 잉어, 메기, 가물치, 쏘가리, 뱀장어, 참게 등이 다시 헤엄친다. 여기에 청둥오리, 왜가리, 갈매기, 수달, 너구리, 고라니, 노루 등이 어우러져 있는 자연생태계의 보고(寶庫)가 되었다. 필자에게는 영국 런던의 템즈강이나 프랑스 파리의 센강, 이탈리아 로마의 테베레강보다 대한민국 우리 동네 한강이 훨씬 더 아름답다.

[전국매일신문]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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