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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이불 피(被)의 물리화학적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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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이불 피(被)의 물리화학적 인문학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4.01.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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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개구멍받이 말로 KBS는 ‘국민의 방송’ 깃발 날리는가.

피(被)는 덮고 자는 이불이다. 옷 의(衣)와 가죽 피(皮)의 합체다. 연상하면 피부를 덮는 옷이 이불임을 안다. 3천5백 년 전 갑골문 사람들의 연상도 그랬으리라.

피습(被襲)이란 말, 요즘 모두에게 익숙하다. 불행하게도 야당 대표가 습격(襲擊)을 당(當)해 신체적인 피해(被害)를 본 큰 사건 때문이다. 

당한 것은 (이불이나 옷 안에 들 듯) 입은 것이다. 피동사(被動詞)의 피동이다. ‘당한 것’ 피동은 ‘내가 한 것’ 능동(能動)의 상대적인 말이다. 더 설명이 필요 없는 ‘국민문법’일 터다. 얻어맞은 것을 피격(被擊)이라고 설명하면 더 적실한가. 때린(공격한) 것은 가격(加擊)이다.

한 언어를 쓰는 대중이 언중(言衆)이다. 언어의 소비대중이고 그들의 언어는 시대와 세태의 살아있는 반영(反影)이다. 그 반영을 정제(整齊)한 결정체는 다음 문화를 이끄는 견인차다. 

‘항공기로 수송(輸送)한다.’는 공수(空輸)를 ‘생산지에서 직송한다.’거나 ‘신속히 배달한다.’는 뜻으로 오해하여 꽤 많은 이들이 잘못 활용하는 것을 학계나 언론이 경계하는 것과 같이, 언중의 세상 말글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소비자의 언어’와 ‘생산자의 언어’로 구분할 수 있겠다. 공공기관(정부) 학계와 함께 ‘언어 생산자’의 대표 격(格)이면서 시민과 가장 가까운 언론(기관)은 여러 의미에서 ‘국어교과서’다. 

KBS도 그런 의미를 자부하며 방송 이외에도 ‘바른 언어’를 가르치는 사업이나, 시민의 우리말 수준을 테스트하여 점수를 매기는 인증(認證)사업을 벌인다. 수입도 꽤 짭짤할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방송에서 실제 사용하는 언어가 시민을 가르치거나 인증의 주체가 될 만큼 정제돼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걱정 많은 여러 사람들이 자주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나 말글 오남용(誤濫用)의 정도나 속도가 점점 강하고 빨라져 우려가 크다.

KBS 뉴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방송에서 이런 언어를 발화(發話)하여 크게 당황했던 기억은 그 사례다. 1월 5일 밤 9시뉴스에서 진행자는 그 뉴스를 이렇게 소개했다. 

“피습 당한 이재명 대표가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은 공천관리위원회의 구성을 끝냈습니다...”

어법(語法)상 틀린 표현, 자주 나온 얘기인데도, 한국 대표방송 대표뉴스의 대표진행자인 이 사람은 이런 비어(非語)를 방송했다. 경험 많은 기자일 텐데 그가 가진 언어가 그 정도일까.   

이렇게 널리 방송된 ‘피습 당하다.’는 표현은 여러 사람이나 상당수 인터넷 공간과 유튜버들의 일상 언어로 널리 퍼질 것이다. 이제 주요 신문에서도 간혹 눈에 띈다. 

被襲이란 말을 쓰고자 한다면 ‘피습했다.’로, ‘當하다’라는 말을 쓰고자 한다면 ‘습격당하다.’로 쓰는 것이 적절하다. 

피습피의자나 피습용의자라는 어색(語塞)한 말도 여기저기 보인다. 풀어보면 ‘습격당한 피의자’나 ‘습격당한 용의자’라는 뜻이 된다. ‘습격피의자’ ‘습격용의자’가 옳다. 語塞은 어원 상 ‘말(문)이 막힌다.’는 뜻이다.

푸는 일 해석(解釋)의 ‘解’는 소(牛 우)의 뿔(角 각)을 칼(刀 도)로 도려 뽑아내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언어의 풀이도 만만하게 여기지 말자. 말과 글은 사전을 스승 삼아 또는 벗 삼아 늘 신중하게 생각하고 선택해야 한다. 공부다.

이런저런 문제 하나둘 아님을 스스로 알까? KBS가 각성 또 각성해 제 역할하기를 기대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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