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솜방망이 처벌이 더 큰 화부른다
상태바
솜방망이 처벌이 더 큰 화부른다
  • .
  • 승인 2016.05.16 1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현정은 회장 일가가 보유한 회사에 일감을 부당하게 몰아주다 적발돼 과징금을 물게 됐다. 지난해 2월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한 개정 공정거래법이 시행된 이후 첫 제재 사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일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 등 4개 회사에 과징금 12억85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현대로지스틱스는 검찰에도 고발당했다.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매제(妹弟)가 보유한 회사를 부당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자산 5조원 이상인 대기업의 총수일가가 지분 30%(비상장사는 20%) 이상을 가진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줄 경우 총수일가까지 사법 처리(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형)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증권은 지점에서 쓰는 복합기를 임차할 때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HST를 거래 단계에 끼워넣어 '통행세'를 줬다. 컴퓨터와 주변기기 유지보수 회사인 HST는 현 회장 동생인 현지선씨가 지분 10%를, 현지선씨 남편 변찬중씨가 80%를 보유한 회사다. 현대증권은 제록스와 직거래를 하면 복합기 한 대당 월 16만8300원의 임차료를 내면 되는데, 굳이 HST를 거쳐 복합기를 빌려 쓰면서 월 18만7000원을 냈다. HST는 가만히 앉아 거래수수료 10%를 거둬들인 셈이다. HST에 대한 부당지원 규모는 일감 몰아주기 금지법이 적용된 작년 2월부터 10개월간 4억6천만원 수준이다. 현대로지스틱스 역시 변찬중 씨(40%)와 그의 두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택배운송장납품업체 쓰리비에 일감을 밀어줬다. 현대로지스틱스는 기존 거래처와 계약 기간이 1년 정도 남았는데도 이를 해지하고 택배운송장 사업에 처음 뛰어든 쓰리비와 계약을 맺었다. 택배운송장은 택배물품의 발송인, 수취인 등의 정보를 기재해 화물 행선지를 명확히 하고 거래내용을 입증하는 자료다. 공급 업체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다. 경쟁 택배운송장 회사가 한 장당 30원대 후반∼40원대 초반에 운송장을 공급하는데도 현대로지스틱스는 쓰리비에서 55∼60원을 주고 운송장을 샀다. 운송장을 12%에서 최대 45%까지 비싸게 산 것이다. 쓰리비에 대한 부당지원 규모는 2011∼2014년 56억2500만원에 달하며, 총수일가는 부당이득 14억원을 올릴 수 있었다. 현대그룹 계열사가 일감을 몰아준 덕분에 쓰리비의 마진율(28%)은 다른 택배운송장 구매대행업체(0∼14%)보다 크게 높아졌다.
공정위는 다만 현정은 회장은 "직접 사익 편취행위를 지시하거나 관여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회사 임원이 부당행위를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제재를 받지 않았다. 회사 임원이 그룹 회장의 매제 회사에 대해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를 일방적으로 지시했다는 설명인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공정위는 지난해 2월 본격적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시행하면서 40개 그룹에서 자료를 받았고, 이중 위반 혐의가 큰 현대, 한진, CJ, 하이트진로, 한화 등 5개 그룹의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조사해 왔다. 또 나머지 법 위반 혐의가 있는 그룹도 단계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산 5조 원 이상인 대기업의 총수일가가 지분 30% 이상을 가진 경우'가 규제대상이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몇몇 재벌이 지분매각이나 인수합병, 혹은 분사 등의 방법을 통해서 지분율을 조작해 규제를 빠져나가는 일이 심심치 않게 알려졌다.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는 단순히 금전적 특혜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거대 기업의 편법상속과 경영권 세습을 위한 음성적 통로가 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기업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 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