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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반본(返本)-체덕지(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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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반본(返本)-체덕지(上)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4.01.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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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우리의 몸, 이 우주 섬김이 삶의 으뜸이니.

군관민(軍官民)이란 말 아시는 분은 아무래도 노장이다. 군대가 먼저고 다음은 관리(관청)이며 마지막이 (국)민이라는 것이다. 대개 ‘군관민 함께’와 같이 나라의 모든 요소가 힘 합치자는 의미쯤으로 쓰던, 박정희 시대의 말이다. 그런데 여태 사전(辭典)에도 올라있다.

사전의 새김이 ‘일반 국민과 관청과 군대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일반 국민’의 일반이란 말은 일반 국민이 아닌 (특수) 국민도 있다는 얘기겠다. 순서도 이상하다. 거꾸로다.  

문민정부라는 알쏭달쏭한 정치(적) 용어가 일반명사로 유통되기 시작할 무렵에 이 말의 순서는 슬그머니 ‘민관군’으로 바뀌었던 것 같다. 황당하게도 민관군도 같은 새김으로 사전에 올라있다. ‘특수 국민’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일까? 허나 세상은 본디로 돌아간다, 반본(返本)이다.

저 용어(의 순서)에는 필시 정치적 음모가 담겼다. 하릴없는 민초(民草)들은 군과 관을 잘 섬겨야 했으니, 그 순서 보고도 침묵하거나 되레 (그 중 하나로 끼워주셔서) 고마웠던 것인가. 아하, 순서에 뜻이 담겼구나, 차례가 정치(력)일세.

시간 지나며 한 표 달라며 애원하는 투로 ‘보통사람’ 타령 곁들여 ‘민관군’을 되뇌었다. 하도 당연한 것이어서 지금 사람들은 저런 시대도 있었을까, 어찌 살았을까 하리라. 

요즘은 케네디 류(流)의 용어 번역인 ‘동료시민’도 나온다. 학창 때 영어 공부에서 익혔던 어휘다. ‘마이 펠로우 시티즌즈(my fellow citizens)’ 말이다. 찌질한 딸랑이들이다.    

그런데 말(표현)과 실제는 늘 다른 것이니 민초들, 참 조신(操身)하게 굴어야 한다. 몸가짐을 요령껏 잘 하자는 얘기다. 출세하는 이들 보면 실감하리라. 설마 저 사람(들)이 저걸 모르고 저런 짓(말, 생각)을 하랴? 권력의 힘이다, 허어 세상도 참!

들머리 길었다. 최근 어떤 (인터넷에도 크게 오르는) 공적인 강연에서 한 학자가 “교육의 틀을 ‘체덕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보며 떠올린 것이 앞서 얘기한 ‘군관민과 민관군’이었다. 신선했다.

서울대총장에 국회의원도 지낸 오세정 교수(물리학)가 ‘디지털 시대 교육의 변화’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자리였다. 지정 토론자로 나선 연세대 민경찬 명예교수(수학)가 저런 ‘발언’을 했다. 그는 새로운 개념의 대학(교육)을 모색한다는 태재대학교 관계자이기도 하다. 

네이버의 ‘열린연단’ 강연, 기라성 같은 학자들도 플로어(참가자)로 앉아 경청하고 견해를 나눴다. AI(인공지능)에 인류의 지성을 맡기는 심각한 상황에 대한 여러 생각들까지, 결코 만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 주장과 논박(論駁)은 어쩌면 시대적 전환의 키워드였겠다. 지덕체(智德體)의 순서를 뒤집은 말이 ‘체덕지’다. 논란도 거셀 수 있겠다. 공부는 안 하고 운동(체육)부터 하라는 것이냐.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은 어쩌고 저쩌고, 이러니 저러니...

10여 년 전, ‘체덕지의 교육’이 나라를 제 자리로 돌려 좋은 세상을 만드는 터전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편 기억이 있다. 칼럼도 여럿 썼다. 어떤 신문의 편집자는 부러 칼럼의 ‘체덕지’를 ‘지덕체’로 고쳐 놓아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편집자 왈(曰) “지 덕 체의 합체(合體)가 교육의 뜻이지 않겠느냐”, 칼럼 필자 曰 “그건 맞는데, 그 순서가 문제라는 취지의 글 아니냐.” 두 논지의 용호상박(龍虎相搏)이었다. 사전에도 없는 말(체덕지)을 쓸 수는 없다는 꽤 보수적인, 그러면서도 당당한 지식인이었다. 

그 ‘치고박고’의 결과는 민 교수의 ‘체덕지’론을 더 궁리하고, 함께 알려 드릴 생각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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