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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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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6.05.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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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잡기를 하는지 골목골목에서 튀밥처럼 아이들이 튀어나온다. 말뚝박기 하는 녀석들이 머리통을 앞사람 가랑이에 집어넣고 기차 고빼처럼 늘어섰다. 땅거미가 내려 금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도 깨금발로 폴짝폴짝 뛰며 땅따먹기를 하는 아이, 깡통보다 신발을 더 멀리 차 날리는 깡통차기 소년…. 어스름에 배가 고플 만도 하건만 한창 흥이 돋은 조무래기들은 바깥마당을 어지러이 뛰어다니며 왁자지껄하다.
그때쯤, “00야 밥 먹어라!” 부르던 어머니 목소리. 저녁밥 짓는 연기가 아직도 머리숱에 치맛자락에 목소리에 매캐하게 묻어 있다. 손에는 미처 놓지 못하고 들고 온 부지깽이가 들려 있다. “아이구, 꼴이 이게 뭐냐?” 먼지투성이가 된 검정 교복의 등짝이랑 바짓가랑이를 토닥토닥 털어주던 어머니 손길.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방금 전 일처럼 선명하고 살가운 감각으로 살아 있다. “배고픈데 어여 가자.” 작은 손을 따뜻이 감싸 쥔 그 손에 이끌려 아이들은 하나둘 골목으로 사라진다. 이윽고 읍내 극장의 커튼처럼 어둠이 내려와 소란스럽던 무대를 적막 속에 묻는다.
심정자 시인의 ‘그때 그 저녁’이란 시를 읽으면 주체 못 하는 허기를 느낀다. 그 시절엔 왜 그리도 자주 배가 고팠는지, 그렇게 배고픈 주제에 놀이들은 왜 또 하나같이 뛰고 뒹굴며 배를 꺼트리는 것들 일색이었는지.
5월은‘가정의 달’이다. 신록으로 성장(盛裝)한 푸른 5월에 가족과 관련된 기념일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5월에는 가정마다 부모, 자녀, 부부와 관련된 날들의 개념에 맞는 이벤트로 부모님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사랑하는 배우자의 품에 장미꽃을 안겨주며 서로의 관계를 새삼 확인하고 되새기게 된다. 특히 5월 5일 어린이날은 온 가족들이 아이들을 위해 선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데 에잇 포켓(Eight Poket)이라는 경제관련 용어가 생길 만큼 대체로 가정마다 하나뿐인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점점 각별해져 가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존재의 근원으로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 하늘보다 더 큰 사랑으로 나를 길러 준 부모님을 위한 어버이날의 의미는 어쩐지 점점 퇴색돼가고 있어 안타깝다. 물질 제일주의 세상풍조에 묻혀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 보다 나에게 금수저나 은수저를 쥐어주지 못한 것을 원망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효(孝)를 실행하는 데는 이루 나열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덕목과 금언(金言)들이 있겠지만, 자신의 부모를 다른 훌륭한 부모와 비교하며 원망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풍수지탄(風樹之歎)이란 말이 있다.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어버이를 여윈 자식의 슬픔을 이르는 말이다.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어 탄식한다는 것이다.
얼전에 아들의 잦은 폭행에 중상을 입은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자식을 처벌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신문기사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최근 들어 발생한,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사건은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한다.예로부터 우리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으로 칭송을 받아 왔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자식을 사랑함을 제일의 덕목(德目)으로 삼고 살아왔다.
조선 중기의 문신 겸 시인이었던 송강 정철은 강원도 관찰사로 재임하는 동안 백성들을 계몽하기 위해 훈민가(訓民歌)를 지어 보급했다. 이 훈민가는 16수의 연시조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에서 이런 대목이 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못할일 이뿐인가 하노라’이다. 부모를 여의고 효행을 다하지 못하는 자식의 슬픔을 이르는 말로,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는 뜻이다.
고산(孤山)윤선도 노계(蘆溪)박인로와 더불어 조선조 삼대 작가 중의 한 분이며 그중에서도 당대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는 송강(松江)정철의 훈민가(訓民歌) 중의 자효이다.효도는 백행의 근본이며, 삼천 가지 죄목 중에 가장 큰 죄가 바로 불효이다. 따라서 효도는 미루었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실 적에 효를 다 하여야 된다고 우리의 옛 성현들은 가르쳤다.
중국 시경(詩經) 해설서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도 효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라는 시가 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식이 효도하려 할 때 부모는 이미 죽어 효행을 다하지 못하는 슬픔을 나타낸 고사성어 風樹之歎(풍수지탄)의 유래가 됐다.
예부터 효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 하여 모든 윤리의 기초로 삼았다. 우리나라에도 효자 효녀들의 훈훈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온다. 신라시대 손순은 집안이 가난해 머슴살이를 하면서 어머니를 봉양했다. 신라시대 상덕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 바쳤고 몸에 종기가 생기면 입으로 독을 빨아내는 효자였다. 삼국사기에도 효녀 지은, 향덕, 설씨녀 등의 이야기가 있다. 효사상은 시대에 따라 변화되기도 하나 부모를 공경하고 그 뜻을 받들어 섬기며 봉양한다는 본질에서는 차이가 없다.
부모가 돌아가고 나면 누구나 효자가 된다고 한다. 이는 부모가 살아계실 때 도리를 다하지 않고 돌아가고 나면 뉘우치기 때문이다. 흔히 ‘나중에 커서 또는 성공해서 효도하겠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바람이 그치길 기다리는 것은 부모가 천년 만년 살아 계시기를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다. 또 부모가 돌아가시면 효도할 수 없을까 봐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결코 효는 미루었다가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무한정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노후에 자식에게 부모로 대접받으려거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장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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