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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39] 풍년이 서글픈 農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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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39] 풍년이 서글픈 農心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6.09.07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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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국내 소비는 물론 해외 수출품 등 모든 공산품에 ‘쌀 소비 촉진세’라도 부과해야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교육세’처럼 보상세 도입이 필요하다. 이른바 ‘농민 눈물세’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덥고 그리고 길었다. 언론에서는 100년만의 더위라고도 했다. 태풍도 비켜갔다. 매년 정례화된 여름철 물난리가 올해는 예외가 되었다. 마른장마가 스치듯 지났을 뿐이다.

지루하고 맹렬했던 폭염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자연은 이제 황금 들녘을 파아란 하늘 아래 펼쳐 보이고 있다. 실하게 여문 벼들이 가을 햇살에 눈부시다. 사상 최대의 풍년이 들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추석을 1주일여 남기고 들려오는 들녘의 대풍(大豊)소식은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농심은 한마디로 ‘풍년이 들면 뭐하노. 쌀값은 떨어지는데..’이다. 유례없는 풍년이 반갑지 않는 이유이다. 풍년의 들녘 앞에서 한숨지어야 하는 것이 오늘의 농촌 현실이다. 특히 중만생종에 대한 수확이 본격화되면 쌀 값 폭락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남지역에서 생산된 쌀 생산량은 86만6천 여 톤으로 전국 최대치였다. 전국 생산량의 20%다. 올해는 이보다 더 많은 90만톤을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쌀 생산량을 줄이기 위해 콩 등 대체작물로의 전환이 이뤄졌으나 ‘유례없는 더위’가 가져 온 ‘유례없는 풍년’으로 쌀 생산량이 오히려 늘어났다. 쌀 생산량이 이처럼 늘어났는데도 쌀 소비는 갈수록 줄어들고 창고의 재고량은 줄어들지를 모른다.

지난 5월말 기준 우리나라의 쌀 재고량은 175만톤에 달하고 있다. 전남에서 2년간 수확하는 양과 같다. 지난해 같은 시기 143만톤에 비해 훨씬 늘어났다. 이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권장 적정 재고량(80만톤)의 2배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양곡재고 창고에도 쌀이 넘쳐난다. 전남지역에 있는 1천219개의 양곡보관 창고의 재고율이 70%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러다간 생산된 쌀을 쌓아 둘 곳간마저 부족할 형편이다.
쌀 소비량 또한 농민들의 한숨을 짙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1985년 128.1kg이었던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30년 사이 62.9kg으로 반 토막이 났다. 지난해 국민 1인당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72.4g이다. 전년도에 비해 3.3%가 줄었다.

쌀밥 한 공기에 쌀 100-120g이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 할 경우 하루에 공깃밥 두 그릇도 채 먹지 않는 다는 계산이 나온다. 돈으로 환산할 경우 국민 1인당 하루 평균 쌀값으로 345원을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자판기 커피 값은 한 잔에 보통 400원이다.

정부는 ‘중장기 쌀 수급안정 대책’을 통해 적정 생산과 수요 확대를 통해 오는 2018년까지 쌀 재고를 80만톤 수준으로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쌀 재배면적을 축소하기 위해 콩 등 대체작물로 전환하는 생산조정제를 실시하고 사료용 쌀과 쌀 이용 술 산업 등 새로운 수요처를 발굴, 육성하는 한편 쌀 수출도 확대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국민들에게 ‘쌀밥을 많이 먹으라’고 강요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시대가 변했고 경제여건이 변한 만큼 밥과 커피를 비교해가며 국민들을 나무랄 수는 없는 법이다. 쌀 소비 감소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쌀값 하락은 공산품 수출을 위해 농사에 대한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쌀 시장을 개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도 자기들이 불리한 공산품 시장을 개방하고 있고 이는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실정상 주요한 ‘국가전략’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스마트 폰이 해외에서 잘 팔리는 것은 국내 쌀값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스마트 폰을 해외에 팔아 남긴 이윤으로 농민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국내 소비는 물론 해외 수출품 등 모든 공산품에 ‘쌀 소비 촉진세’라도 부과해야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교육세’처럼 보상세 도입이 필요하다. 이른바 ‘농민 눈물세’다. 농민의 희생으로 국가가 부강해지는 만큼 농민에게는 그에 따른 보답이 국가로부터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농촌에 고령자가 많아 머지않아 인구감소가 이뤄지고 그러다 보면 경작지가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농촌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벼락 맞을 일이다. 희생에 따른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착취 그 자체다.

정부는, 그리고 우리는 풍년 앞에 눈물 흘리고 있는 농민들을 착취하고 있지 않은가 돌아볼 일이다. 그 전에, 추석을 맞아 고향에 가거들랑 쌀 한 톨에 맺힌 농심의 한숨을 헤아리길 바란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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