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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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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법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6.10.1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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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이규보 문집에 ‘와이로(蛙利鷺)’라는 기록이 있는데, 까마귀가 개구리를 잡아 백로에게 바치고 가수왕으로 판정받았다는 것으로 뇌물을 ‘와이로[개구리]’라 했다.고려 19대 명종(明宗)이 혼자서 야행(夜行)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요행히 민가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했지만 집주인(이규보: 고려말 학자)은 누추하다고 거절하며 인근의 주막을 권유했다. 그런데 대문에 붙어있는 ‘와이로 유아무와 인생지한’(蛙利鷺 唯我無蛙 人生之恨) 글귀가 궁금했다.
즉,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것이 오로지 인생의 한이다’는 문구를 명종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주막의 주모에게 그 집에 대해 물어보았다. 주모의 말에 그는 과거에 낙방하고는 주로 집안에서 책만 읽고 살아간다고 했다. 이에 궁금한 명종은 그 집 주인에게 그 글귀의 대해서 물어보니 집주인은 자신의 처지를 적은 것이라며 사연을 이야기했다.
사연인 즉,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있었는데, 하루는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노래자랑에 내기하자고 했다. 3일 후에 노래시합을 하되 심판은 백로(白鷺:황새)가 보기로 했다. 꾀꼬리는 어이가 없었다. 까마귀가 자기에게 도전해 오다니 시합에 응해 주고는 3일 동안 목소리를 가꾸었다. 까마귀는 노래연습도 안 하고, 그동안 자루를 들고 논두렁의 개구리만 잡으러 돌아다녔다. 잡은 개구리를 백로에게 다 주고 신신당부했다.
약속한 3일 후에 꾀꼬리와 까마귀는 노래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에게 판정만 기다렸다. 꾀꼬리는 승리를 장담하고 기다렸던 판에,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 주었다. 왜 패배한 지 알아보니, 3일간 잡은 개구리를 백로에게 뇌물로 바쳤기 때문이다. 이를 본 이규보는 꾀꼬리에 낙담하고 실의에 빠져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는 글을 대문에 붙였던 것이다. 이 글자는 부정으로 뇌물을 바친 자에게만 과거급제를 주니 부패가 만연하다고 개구리를 비유해서 한 말이었다. 따라서 개구리를 백로에게 주면 만사가 OK라는 뜻에서 와이로(蛙利鷺)란 말이 생긴 것이다.지난달 28일에 ‘김영란 법’이 시행됐는데 이 법을 ‘와이로법[개구리법]’이라고 하면 더욱 의미심장했을 것이다.
최영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부친의 유언을 실천했던 청렴한 무인이다. 무너지는 고려 사직을 지키려 했던 노장은 자신이 키운 후배 이성계에게 죽음을 당했다. 최영의 청렴한 정신과 기상만큼은 애석히 여긴 것인가. 이성계는 그가 죽은 지 4년 후 서둘러 복관시키고 시호까지 내린다.‘청빈낙도’는 청백리들이 실천하고 싶은 명예로운 삶이었다. 세종 때 유관이나 선조 때 이원익 대감도 비만 오면 집이 새 우산을 받쳐야 했다. 유관은 아내에게 ‘우리는 우산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찌 할꼬’라고 말했다. 뇌물을 안 받고 녹봉으로만 살았으니 낡은 고가를 수리할 돈이 없었던 것이다.
서애 유성룡도 녹봉 외에는 뇌물을 받지 않아 항상 궁색하게 살았다고 한다. 서애가 모함으로 파직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한강을 건널 배삯이 없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사람들이 엽전을 거둬 한강을 건너게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청백리로 녹선 되기란 자격이 까다로웠다. 500년 역사 동안 약 210명밖에 안 되는 것을 보면 사대부들이 청빈낙도의 삶을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너무 청백하여 백성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었다. 중국 고사에는 지독한 청렴 관리들을 ‘혹리(酷吏)’라고 기록한다.
조우(趙禹)는 한 무제 때 ‘혹리’다. 그는 청렴하여 어사(御史)로 발탁됐으며 많은 율령을 제정했다. 관리가 범죄를 보고 묵살하면 똑같이 처벌하는 견지법(見知法)을 만들었다. 관리들은 이후로 잘못을 보면 서로 감시하고 고발했다. 한나라 사회는 각박해졌으며 결국 이 덫에 걸린 법률창안자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상앙(商)의 악법’ 고사도 ‘좋은 법일지라도 백성들에게 가혹하면 그것이 독이 된다’는 것을 지칭한 말이다. 공손앙은 기원전 390년경의 인물로 혹리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으나 엄격한 법집행이 백성들과 귀족들의 반발을 불러 결국 모함을 받아 사지가 찢겨 죽었다.공의휴는 고대 중국의 청백리였지만 역시 혹리로 평가된다. 한 재상이 공의휴가 생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생선을 보냈지만 이를 돌려보냈다. ‘생선을 좋아하면서 왜 받지 않냐’고 측근이 묻자 공의휴의 대답은 이랬다.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내 녹봉으로도 생선 정도는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그런데 생선을 받기 시작하다가 파면되고 나면 내가 어떻게 생선을 먹을 수 있겠는가?”이런 공의휴를 재상이 좋아할 리 없었다. 재상은 그가 너무 강직하여 조정에 필요한 인물이 아니라고 하여 기용하지 않았다고 한다.‘김영란법’이 시행되자 사회가 혼란의 와중에 빠졌다. 국민 여론도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면서 명암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피해가 예상되는 화훼, 축산농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도가 있다. 여기다 억대 보상금을 노리는 ‘란파라치’들이 등장, 사회를 감시와 불신의 늪에 빠지게 하고 있다. 란파라치를 가르치는 학원까지 생겨났다니 점입가경이다.
중국 한비자가 집대성한 법가(法家)는 사회적 관계성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됐다.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사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그대로 두면 공익을 편취해 나라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나라의 안정과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선 상과 벌로 백성과 신하들의 탐욕을 제어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관리를 독려하고 백성들에게 위엄을 보이며 악과 위험을 물리치는 데 형벌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제자백가의 한 줄기에 불과했던 법가는 진나라의 통치 이념으로 전격 등용돼 꽃을 피우게 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법이 공포되자 아우성이었다. 혹자는 칭찬하고, 혹자는 비난했다. 둘다 잡아다 엄벌에 처하자 말들이 사라졌다. 길에 떨어진 물건조차 줍는 사람이 없어졌으며, 산에는 도적이 사라졌다.” 진시황은 이런 사회적 안정을 기반으로 중국 최초로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법가는 인성에 대한 불신에 기반을 둔 데다 진의 통치술은 인간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독을 품었다. 법치의 의미인 ‘법의 지배(rule of law)’보다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추구했기에 진의 멸망과 함께 주류에서 밀렸고, 법가 사상가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대한민국의 ‘청렴 실험’으로 불리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 등에 관한 법)도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법으로 그 이면에는 공적분야 전반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신하는 자신에게 해가 되고 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법가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김영란법을 폄하코자 하는 의도는 아니다.
청렴 공직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김영란법이 ‘혹리’의 부작용이나 ‘상앙의 악법’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일까지 권익위원회나 법률적 자문을 받는 사례가 생겼다. 아예 안 주고 안 받자는 풍조가 벌써부터 만연되어 인보상조의 기풍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옛날이나 지금이나 공직자들에 대한 청렴요구는 다를 게 없다. 공직사회가 부패하면 나라의 장래는 희망이 없다. 김영란법의 시행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공직사회가 스스로 금도를 지키는 것이 성공의 열쇠가 아닌가 한다.
금품수수 항목에서는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 원, 1년 300만 원을 넘는 금액을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상급자가 부하 직원에게 제공하는 금품ㆍ사교ㆍ의례 등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이나 선물, 경조사비도 각각 3ㆍ5ㆍ10만 원의 범위를 지켜야 한다.한마디로 말하면 주지도 받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 이 법에 자유로울 수 있다. 이는 삭막한 세상에서 살아가자고 약속이나 하는 듯 여ㆍ야 정치인들이 법 제정을 했다. 인간 자체의 의례를 벗어난 삶을 정부가 강조하듯 정해버린 것이다.
고마운 이에게 밥한 끼 사는 것도 신세 진 지인에게 선물 하나도 고심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아야 할 우리들이 무엇을 배우고 느끼겠는가? 정부는 이 법에 저촉되는 400만 국민이 겪어야 할 위축된 사회생활과 접어두고 살아야 할 경애심 등은 생각해봤는지 묻고 싶다. 게다가 이 법은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같은 듯 다른 적용내용이 있어 혼란스럽다.세무공무원에게 사교 목적으로 2만 원의 식사제공을 했으면 적법한 것이고 세무조사를 나온 공무원에게 같은 금액의 식사제공을 했다면 이는 위법으로 간주된다.
이 같은 사례는 연사여비ㆍ강연료ㆍ참석자 선물ㆍ식사 제공ㆍ상호접대ㆍ경조사비 등에서도 애매모호함을 엿볼 수 있다.최근 들어 이 법에 적용되는 단체나 공무원들의 사내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거기서 얻어진 결론은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 것이며 조금은 삭막하더라도 더치페이가 즉답이라는 것이다.이웃과 거래업체와 사제지간에 나누는 정은 고사하더라도 올 연말 정부의 예산집행이 있는 국회 예결위가 열릴 때 입법화를 한 그들은 어떻게 하는지 우리들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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