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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엄중(嚴重)한 상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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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엄중(嚴重)한 상황이란 말인가
  • 윤택훈 지방부장, 속초담당
  • 승인 2016.12.05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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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곳곳으로 성난 민심은 촛불에 이어 횃불까지 등장한 가운데 대통령과 정치권을 향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대통령이 연루된 최순실게이트가 점입가경이다. 지난 주말 232만명이 촛불을 들고 진상규명·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쳤다.
이번 주부터 특검과 국정 조사, 탄핵이 본격화된다. 여전히 살얼음판 같은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이로인해 국민들은 분노하면서도 불안하다. 정부기능은 마비되고 정치는 길을 잃고 갈팡질팡 하고 있다.
그야말로 요즘 청화대도 여당도, 야당도 ‘엄중’히 국민들의 뜻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엄중은 본래 사전에 있는 낱말이지만 북핵 위기와 맞닥뜨린 박근혜 대통령이 쓰면서 유행어 비슷하게 돼버렸다.
북의 도발 가능성을 놓고 “엄중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후 최순실의 존재를 들키자 상황은 더욱 엄중해졌다.여야 정치인은 물론, 그들이 엄중 운운하는 것을 지켜본 국민도 엄중을 입에 달고 있는 가운데 엄중의 실천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 또한 “박 대통령이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무거운 마음으로 들었고,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며 엄중을 연발하고 있다. 엄중(嚴重)은 의미가 여럿이다. ‘사기-곽해전’에서는 ‘존중’이다.
‘후한서-청하효왕경전’에서는 ‘엄숙하고 정중함’, 같은 책 ‘두림전’에서는 “옛날에는 육형이 엄중해서 사람들이 법령을 두려워했다(古者肉刑嚴重 則人畏法令)’고 해 ‘가혹함’이다.
그러나 ‘엄중한 상황’이라고 할 때의 엄중은 다른 뜻이다.‘엄(嚴)’자는 ‘입 구(口)’자 2개인 윗부분과 나머지로 돼 있다. 고문에서는 口가 세 개였다가 둘로 줄어들었는데, 바로 ‘놀라 큰소리로 부르짖을 훤()’자다.
그리고 그 아래 ‘벼랑 엄()’자와 ‘굳셀 감(敢)’자로 이뤄진 부분은 ‘산의 바위처럼 가파르고 험준한 모양’을 나타내는 ‘음’자”라고 풀이된다.이렇듯 구성글자들에서 인지되고 또 ‘맹자-공손축’ 하편에서 알 수 있듯, 엄자에는 ‘긴급하다’의 뜻이 있다.
이 뜻이 요즘 정치권에서 사용하고 있는 ‘엄중’이란 말과 직통한다. 즉, 엄중에서의 엄은 그 글자가 나타내는 여러 뜻 중에서 ‘긴급함’을 뜻하고 중은 ‘위중함’의 준말이다.
그러니 ‘사태가 엄중하다’는 말에서의 엄중은 ‘정세가 긴급하고 위중한 상태(urgent and critical)’를 나타내고, ‘법을 엄중하게 집행하다’에서의 엄중은 ‘가혹·혹독·몹시 엄함’을 뜻하는 말로 풀이된다. 국법을 수호하는 최고 위치에 있으면서, 경솔한 처신을 해 위급한 지경에 빠진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현재의 시국이 당연히 엄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 우리나라를 밖에서 바라보는 북한의 김정은과 외국인들 눈에도 우리의 현 시국은 ‘매우 위급한 상태(=엄중)’로 인식되고 있을 것이다. 현재의 상태는 구한말과도 같다. 당시에도 엄중을 논했다.1894년 갑오변란으로 민씨 정권이 붕괴되고 흥선대원군 섭정으로 제1차 김홍집 내각과 군국기무처가 들어서 갑오개혁을 했다. 이후 3년, 매천(梅泉) 황현이 고종에서 상소했다. “법을 엄중하게 집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혼란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크나큰 죄악을 저지른 역적이 당사자만 주벌(誅罰)되는 데서 그치고, 유배(流配)의 형벌을 받은 자도 곧바로 용서를 받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징벌을 받는 경우가 적고 요행히 모면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위아래가 법을 무시하고 태연히 범법을 저지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윤중은 대신이고 조인승은 관찰사입니다. 그들의 죄가 죽음에 해당하면 왕법으로 처리하면 되는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강도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강도를 체포한 뒤에 도리어 관대하게 용서를 해 줘 평소에 분노를 꾹 참고 있다가 난민의 손을 빌려 죽이는 듯한 형국이 됐다는 점입니다. 성상께서 근신(近臣)을 이렇게 대우하시니, 그들에게 죽을힘을 다해 일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진실로 바라건대, 지금부터는 조금씩 엄중한 법을 적용해 크나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두려워할 줄을 알게 해 주소서 한 황현의 상소가 불현 듯 떠 오른다.지금은 엄중이 상황, 시국, 시기, 사태 따위를 표현하고 있다. 이어 조사, 책임, 문책, 처벌, 심판을 접미사처럼 거느리며 발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엄중이란 단어와 접미사에 국민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실증내고 있다는 사실을 대통령과 정치권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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