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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4가 설렁탕 맛집 '문화옥' 이순자 대표, 27년째 어르신들에게 무료 식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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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4가 설렁탕 맛집 '문화옥' 이순자 대표, 27년째 어르신들에게 무료 식사 제공
  • 서정익기자
  • 승인 2017.03.27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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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부터 매달 어르신 100여명 초청해 식사 대접... 고아들 합동생일잔치, 교도소에 영치금도 넣어줘

-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서울미래유산 등에 선정

 

 

<전국매일/서울> 서정익 기자 = 을지로4가에 위치한 설렁탕집 '문화옥'은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와 한식재단에서 발표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100선'에 뽑힌 맛 집이다. 문화옥의 설렁탕을 맛보러 오는 손님들로 늘 붐빈다.

 

매달 마지막 주에는 아주 특별한 손님들이 이 집을 찾는다. 을지로에 사는 독거 어르신 60여분이다. 맑고 담백한 국물에 담긴 따뜻한 밥으로 속을 채우고 나면 온 세상이 내 것 같다.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은 식당을 나서며 입구에 서있는 한 할머니에게 척 엄지를 내밀기도 한다.

 

바로 문화옥 사장인 이순자(77)씨다. 한 끼를 해결하기도 힘든 어르신들을 위해 매달 말일마다 동네 어르신 100 여명을 모시고 점심을 대접한 것은 지난 90년부터. 올해로 27년째 해오고 있다.

 

그동안 모신 어르신만 3만 2000여명에 달한다. 지금 설렁탕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3억원에 가깝다.

 

"외며느리인 나를 끔찍이도 생각하셨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르신들을 볼 때 마다 시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시작했죠."

 

시어머니는 지금의 이 씨가 있게 한 멘토나 다름없다. 서울 금호동에서 태어난 시어머니는 광산을 했던 시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 전쟁 와중인 1952년 동대문시장 근처에서 빚을 얻어 설렁탕 장사를 시작했다.

 

바로 문화옥의 시작이다. 손맛이 뛰어난 시어머니는 5년 후에 을지로4가의 일본식 건물을 사 이사해 본격적인 문화옥 시대를 열었다.

 

을지로 토박이였던 이씨는 27살 때 남편과 결혼해 분가했으나 형편이 안돼 3년 후인 69년, 시어머니와 살림을 합쳤다. 시집과 가게가 같은 집이라 자연스레 시어머니 밑에서 음식만드는 법을 배웠다.

 

시어머니는 고기 손질부터 국물 끓이는 방법, 시간까지 이 씨를 혹독하게 가르칠 정도로 엄청 무서웠다. 하지만 식당 식구들이나 오는 손님들에게 살갑게 대해 가게 초부터 있었던 주방장은 무려 50년 동안이나 문화옥 주방을 지켰다.

 

굉장히 적극적이었던 시어머니와 순종적이면서도 성실했던 며느리의 조합은 곧 문화옥을 을지로 일대의 소문난 맛 집으로 성장시켰다. 손님들로 넘쳐나면서 음식점을 확대해 나갔다.

 

이 씨가 자신을 대신해 문화옥의 손맛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시어머니는 문화옥을 이 씨에게 넘기고 종로5가에 문화옥 분점을 냈다. 하지만 87년 시어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한동안은 정신줄을 놨지요. 시어머니한테 많이 의지했었거든요. 하지만 시어머니가 남기신 문화옥의 손맛을 중단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정신 차리고 음식만드는데 집중했어요."

 

그 무렵, 을지로동 새마을부녀회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 씨는 부녀회원들과 동네 경로당을 방문했을 때 점심식사도 제대로 해결 못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한번 이분들을 문화옥으로 모셔서 식사대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는 경로당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시어머니와 같은 또래의 어르신들이 점심식사도 거르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 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내가 정성들여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 부녀회장과 상의해 인근의 경로당에 있는 어르신 100분을 모시고 문화옥의 대표상품인 설렁탕을 대접했다. 따뜻한 국물에 기뻐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며 이 씨는 여력이 있는한 자주 대접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27년째 매달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이 씨는 봉사에 눈을 떴다. 그래서 2000년대 중반까지 집에서 떡을 만들어 매달 부녀회원들과 함께 종로 탑골공원에 가 어르신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었다.남산에 있는 한 고아원 어린이들을 초청해 매달 합동생일잔치도 열어주었다. 또 한 달에 한번 안양교도소를 찾아가 떡과 과일은 물론 영치금까지 넣어주기도 했다.

 

봉사에 대한 즐거움이 더하다 보니 환갑이나 칠순 등 집안의 큰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씨는 잔치 대신 봉사활동을 펼쳤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몸이 예전같지 않아 더 이상의 대외활동은 하지 않지만 성실함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 씨는 항상 새벽3시에 일어난다. 집이 있는 장충동에서 을지로4가까지 걸어서 문화옥에 도착하는 것은 새벽4시. 혼자서 가게 문 열 준비를 하는데 오는 손님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아침기도를 빼먹지 않는다. 종업원들이 오기 전에 본인이 고기를 푹 삶는데 가게 문이 열리는 새벽6시 무렵 오는 손님들은 이씨가 직접 만든 설렁탕을 맛볼 수 있다.

 

맛에 대한 이 씨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기름이 많아 쓰기 힘든 꼬리와 도가니만 빼고 전부 국산을 사용한다. 그래서 가격 인상 요인이 많음에도 다른 곳보다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 씨가 그만큼 맛을 잡고 있어서다.

 

고기가 들어올 때마다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하는데 이런 정성이 담긴 사골과 양지머리, 머리고기로 낸 설렁탕 육수는 담백하다. 조미료를 일체 넣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다보니 오래전부터 문화옥을 드나들었던 손님들이 지금도 모임을 문화옥에서 할 정도로 충성적인 단골들이 많다. 심지어 손자들까지 3대가 같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지난 2015년에는 서울시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재 문화옥은 2004년부터 이 씨의 딸인 김성원(48)씨가 가업을 잇고 있다. 매달 음력 초하루날마다 고사를 지내는 이 씨. 신혼초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시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여러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 씨의 소원은 소박하다.

 

"지금처럼 한결같이 하고 싶어요.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여러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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