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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1세기 한국 누구에게 맡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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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1세기 한국 누구에게 맡길 건가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7.04.27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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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면당해 청와대를 떠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이번에는 성공하는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대통령 선거일이 불과 1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유례가 드문 벼락치기 선거다. 당내 경선을 포함해 6개월이 걸리는 과정을 두 달 안에 속성으로 마쳐야 한다.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각 후보들의 공약 개발과 집권 후 국가운영 설계도 구상 등이 부실해질 위험이 있다. 유권자들도 후보자 탐색 시간이 부족해 충동구매가 이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걱정이 앞서지만 우리가 역대 정부의 실패 경험에서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만 있다면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18대 대통령을 뽑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012년 11월 27일,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상대를 이렇게 비난했다. 유세 첫날부터 네거티브 공세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지금 보니 박 전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예견은 무섭게 맞아떨어졌다. “유신독재 세력의 잔재를 대표하는 박 후보가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겠느냐”는 말도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1번만 찍어 온 보수 유권자 중에는 “박근혜가 돼도 걱정”이라면서도 안보관이 불안한 문재인보다 낫다며 투표장에 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

물론 박 후보는 “100%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문 후보는 “(후보 단일화로 물러난) 안철수의 새 정치를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걱정스러운 것이다. 점쟁이가 잘되는 것은 못 맞혀도 잘못되는 것은 귀신같이 맞히는 것처럼 정치적 공격수는 상대의 가장 치명적인 부분을 귀신같이 안다. 박근혜는 사라졌지만 문 후보는 ‘스스로 폐족이라던 실패한 정권의 최고 핵심 실세’ 그대로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다짐과는 거꾸로 간 끝에 탄핵까지 당한 데는 유신공주처럼 타고난 기질 탓이 크다고 나는 본다. 기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어서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 환경 변화나 죽을 만큼의 역경, 연기 또는 연출을 통해 성격이 달라질 순 있지만 단련(鍛鍊)되지 않은 인격은 도로 기질에 점령당한다.

성공한 대통령이 많은 미국에선 정책이나 인사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도 대통령의 용기와 정직성 같은 기질과 성격은 바꿀 수 없다며 ‘성격이 최고다(Character Above All)’ 같은 연구 결과가 쏟아진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후보들의 기질에 관심이 집중됐다. 대선 사흘 전, 위기 때 누가 더 좋은 판단력을 보이겠느냐는 갤럽 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꼽은 유권자가 훨씬 많았으나 예상을 뒤엎고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역시나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옆에 두고 시리아 폭격을 하는 식으로 자신의 예측 불가능성을 입증했다. 이처럼 여론조사는 틀릴 수 있어도 기질을 알면 어떤 대통령이 될지 예측이 가능하다.
 
문제는 치열한 검증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질로 정직성, 도덕성, 타협 능력 등이 꼽히는데 이는 과거의 행적을 들춰내는 네거티브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자기주도성이 부족하고 세상을 못 믿었던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최태민의 ‘최’자만 나와도 “천벌 받을 일”이라며 부르르 떠는 바람에 검증이 불가능했지만 이번에도 대충 넘겨서는 비슷한 과거가 반복될 수 있다.

오는 5월 9일 실시되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는 역대 가장 많은 15명이 대선 후보로 등록했다. 투표용지 길이도 역대 대선을 통틀어 가장 긴 28.5㎝에 달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처럼 많은 후보들이 나왔지만 선뜻 뽑고 싶은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조기에 치러지는 대선이지만, “누가 돼도 걱정”이라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선거 때마다 경제 회생, 선진 정치 구현, 민생 안정 등 근사한 포장지로 국민들을 현혹하지만, 대통령이 바뀐다고 나아질 게 없다는 원성뿐이다.
 
그렇다고 투표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개미와 흰개미가 다르고 사슴벌레와 장수하늘소가 다르듯, 더 나은 인물을 골라내는 혜안이 필요하다. 역사는 누가 대통령을 했느냐 보다, 어떤 대통령이었느냐를 더 중시한다는 의미다. 우리와 달리, 미국의 경우 존경받는 대통령이 한둘이 아니다. 대학 총장이 된 토머스 제퍼슨,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한 때 ‘미국 정치의 수치’로 불리기는 했지만 ‘평화를 넘어서’ 등 9권의 책을 저술하며 재임 시 불명예를 말끔히 씻어낸 리처드 닉슨, 북한과 중동지역을 넘나들며 사랑의 집짓기를 펼친 지미 카터 등.

특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프랑스 대선에 출마시키자는 온라인 청원운동까지 벌어질 정도로 퇴임 후의 모습이 더 아름답게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하고도 임기를 채우지 못한채 서울구치소에 갇혀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에서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골라 최악은 막아야 한다. 민초들의 피와 땀이 엉긴 귀중한 세금을 축내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국정운영이나 위기돌파 능력, 식견과 통찰력, 도덕성, 인성 등을 꼼꼼히 살펴 최적의 후보를 가려내는 것이야말로 유권자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이다.

무엇보다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진 갈등과 증오심을 봉합할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따라서 두 눈 부릅뜨고 선거판을 지켜보며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생각만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제2의 최순실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지금 한반도는 북핵과 사드문제로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나라안팎의 정세가 그만큼 위태로운 지경이다. 안보와 경제가 이미 백척두에 서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대선 후보들은 선동적 구호를 앞세워 더 이상 국민을 기망하지 말아야 한다. 너나없이 ‘내가 최고’라며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읊을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국민들을 사지로 내모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의 슬로건은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 돼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얼빠진 팔색조 같은 정치로는 나라를 바꿀 수 없다. 국민들도 더 이상 세치 혀로 막말을 일삼으며 유세(遊說)하는 세객(說客)에게는 절대로 표를 주지 않아야 한다. 지난 1월 감동적인 고별연설로 미국인들에게 자긍심과 용기를 주고 떠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퇴임식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그런 멋진 대통령을 가져볼 수는 없을까. 대단한 성공이 아니라도 좋다. 제발 임기를 마치는 날 국민 대다수의 박수를 받으며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적어도 1970년대 유신이나 1980년대 운동권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대선은 익숙한 과거 대(對) 불확실한 미래의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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