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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타파 상징…대선땐 文 공동선대위원장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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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타파 상징…대선땐 文 공동선대위원장 활약
  • 김윤미기자
  • 승인 2017.05.31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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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출신 4선…온건 진보파
45년만의 ‘野 대구승리’ 주역


 김부겸 신임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는 대구 출신의 4선 의원으로, 재야 운동권 출신으로, 합리적 온건 진보파로 분류된다.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한 뒤 1991년 3당합당에 반대한 세력이 남은 ‘꼬마 민주당’에 입당했다.


 1995년 노무현 전 대통령,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주축이 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의 막내로 역할했다.
 1997년 통추가 해체될 때 한나라당에 합류한 뒤 2000년 군포에서 배지를 달았고 당내 소장 개혁파로 활동했다.
 2003년 7월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고 이후 17대, 18대 의원에 내리 당선됐다.
 2012년 1월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뽑혀 TK(대구·경북) 출신으로는 40년 만에 첫 선출직 야권 지도부가 된 그는 지역주의 타파, 경쟁의 정치를 기치로 내세우며 지역구인 경기 군포를 떠나 19대 총선에 대구행을 선택했다.


 수성갑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이한구 후보와 맞붙어 고배를 마셨으나 39.9%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2년 말에는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으로 활약했다.
 2년 뒤인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도전해 40.3%라는 높은 득표율을 보였지만 역시 새누리당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19대 총선에서 ‘삼세판’ 끝에 대구 민심을 얻으며 4선 의원이 됐다. 소선거구로 지른 총선 기준으로 대구에서 정통 야당의원이 당선된 것은 1971년 이후 45년 만이었다.
 특히 당시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였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꺾었다는 점에서 단숨에 잠룡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작년 말과 올해 초 ‘촛불 정국’을 거치면서 지지율 부진을 겪었으며, 지난 2월 “정권교체를 위한 밀알이 되겠다”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문재인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을 재차 맡았다.


 특히 대구에서 대선 유세를 하던 도중 일부 청중의 야유에 맞서 격정적으로 연설하는 영상이 SNS에서 많은 관심을 끌며 호응을 얻기도 했다.
▲ 경북 상주(59) ▲ 서울대 정치학과 ▲ 16·17·18·20대 국회의원 ▲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 ▲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 ▲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 18대 문재인 대통령후보 공동중앙선대위원장 ▲ 더불어민주당 정책엑스포추진위원장 ▲ 19대 문재인 대통령후보 공동중앙선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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