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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관참시(剖棺斬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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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관참시(剖棺斬屍)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7.10.1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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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맞이하는 가을이지만 또 다른 경이로운 색감의 만찬을 준비하는 자연현상은 리셋의 달인인 것 같다. 우리의 마음도 저 들판처럼 고요히 물들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계절에 접어들었다. 그렇지만 이 푸른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연일 이어지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평화로운 세상을 공포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도발로 한반도가 6·25전쟁 이후 최고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정치권은 한가하게도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을 놓고 연일 공방을 펼치고 있다.
 
조선조 이래로 우리 사회는 사색당파로 몸살을 앓아 왔다. 동인,서인,남인,북인,대북,소북등 이 편 가르기 하는 당쟁 속에서 득세하는 어느 한파라도 가입하고 줄을 대어야만 입신출세의 길이 열렸고, 반대로 그 당파 때문에 자신은 물론 멸문지화(滅門之禍)의 큰 재앙을 입었던 것이 사실이다.이씨조선 500년 동안 4대사화가 있었으니 무오사화,기묘사화, 을사사화,갑자사화가 바로 그것이다. 상대 파를 공격하여 많은 사람이 고문당하고 죽어나갔으며, 사람 많이 죽이는 덕택에 큰 영화를 누리기도 했다.

역사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역사 속에 감추어졌지만 왕조실록에 의해 드러난 많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사건과 몰염치한 시류편승을 우린 많이 알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건으론 계유정란(癸酉靖亂)을 떠 올리게 한다.
 
골육상쟁이란 부도덕의 극치와 지금까지 더러운 혁명으로 회자되는데 필자가 살아오는 동안 영화나 TV를 통하여 몇 번이나 보았다. 때로는 배우를 바꾸어가며 각색하고 재탕해 왔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 되었다.
 
삼촌이 정권을 빼앗기 위하여 어린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심지어 안평대군,금성대군인 두 형제를 죽이는 목불인견의 패륜을 보여주는 정권욕에 눈이 먼 수양대군!이 사건에 의해 유명한‘사육신’이 등장하는데 훗날 어떤 역사가는 살아서도 지조를 지켰다하여 ‘생육신’을 만들어 그 희대의 사건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 계유정란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신숙주란 사람이 있다. 변절자의 대표적인 이름으로 옛사람들이 영원히 잊지 말자 하여 붙인 이름이 숙주나물이다. 사람이름에 나물을 붙인 것으로 실은 녹두나물이다. 녹두나물은 쇠고기 국을 끓일 때나 잔치 등에 쓰이는 나물로서 맛이 콩나물에 비하여 담백하고 씹을 때도 아삭한 맛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이 녹두나물, 즉 숙주나물은 잘 쉬는 것으로 특히 여름에 한나절을 보내기 어려운 나물로 먹지 못하고 아까운 나물을 밖으로 내다 버려야 하는 경우를 더러 보았다.이렇듯 역사 속에서 거울을 보듯 변절을 대변하기 위하여 붙인 이름으로 영원히 불명예의 대상으로 남아야 하는 속칭 서양‘주홍글씨’가 되고 만 것이다.
 
유교사회의 핵심인 선비사회! 선비는 정의롭고 지조가 있어야 하며 불의를 보면 죽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그 불의를 밝혀야 하며, 불사이군(不事二君)! 즉 죽어도 두 임금을 섬기지 못한다는 유교사상에 배치되는 이유였다. 역사를 살펴보면 어디 신숙주 한사람뿐이랴! 많은 사람이 시류에 편승하여 무고나 밀고를 하여 영화를 누리기도 하였으며 요즘의 국무총리격인 영의정을 몇 번이나 하고 자신의 딸을 왕비로 보내며 떵떵거리고 잘 살았던 한명회도 연산군때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 사건에 연루되어 사후에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이 부관참시라는 말은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들어도 생소한 이름으로 ‘죽어서 해골이 된 사람을 무덤에서 꺼내어 목을 자르는 모진 형벌’이었다. 이미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서 남은 거라곤 해골뿐인데도 그런 가혹한 형을 집행하였다는 것은 죽은 자의 시신조차 훼손하여 그 지은 죄를 엄히 물어 역사에 길이 남기겠다는 일벌백계의 응징이며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일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새삼스럽게 이 캐캐묵은 형벌을 꺼내어 이야기하는 것은 과거나 현재가 같다는 것이다.자신의 영달을 위해서,정권을 잡기 위해서 국민이 공분하는 죄를 지은 자는 부관참시의 대상이 되고도 남는다는 생각은 지나친 착각일까?  부관참시(剖棺斬屍)는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사람에 대한 큰 죄가 드러났을 경우 다시 극형에 처하는 형벌을 말한다. 말 그대로 관을 쪼개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걸어 놓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를 본보기로 삼는 형벌이었다.

부관참시는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방법으로도 활용됐다. 연산군이 대표적이다. 연산군은 왕도정치를 강조하며 간언하는 사림파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 연산군과 사림파는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였고 이를 눈치챈 훈척세력은 사림파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결국 사관인 김일손이 쓴 사초를 핑계 삼아 훈척세력이 연산군에 상소문을 올렸고, 이를 빌미로 연산군은 사림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에 들어갔다. 이때 사림파 핵심인물 40여 명은 사형에 처하거나 유배당했고, 죽은 지 6년이 지난 사림파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했다. 이것이 무오사화이다.

이후에도 연산군을 둘러싼 정치세력들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럴때마다 연산군은 어김없이 극형인 부관참시를 동원해 피바람을 몰고 다녔다. 물론 부관참시는 왕권에 대한 도전인 역적모의 등 대역죄인에게도 내려졌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대역죄인의 죄 또한 정치적으로 활용되거나 모함을 받은 일도 많았다는 점에서 부관참시를 당한 사람이나 그 유족들은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자신의 혈육이 사지가 찢기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말만 들어도 끔찍한 형벌인 부관참시가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지역 정치인의 글 때문이다. 전 정부에 대한 수사로 인해 시끄러운 상황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글을 써 논란이 됐고 반대쪽에선 노 전 대통령을 두번 죽이는 것으로 부관참시한 일이라 비판했다. 진의가 어찌 됐든 이로 인해 정치권 한쪽에선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재수사를 촉구하는가 하면, 상대쪽에서는 해당 정치인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서로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나라 안팎으로 산적해 있는 현안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서로를 비난하기에 앞서 눈 앞에 놓인 안보위기 상황과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에서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모습이 낯설다. 그 어느때보다 한의 강도 높은 도발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나서서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각종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협치하는 정치권을 기대해본다.

지금은 혁명을 개혁처럼, 개혁을 혁명처럼 추진해야 하는 엄중한 시점에 와 있다. 정권이 분발해야 한다. 여야 협치를 위해 일차적으로 정책 사안별 연대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정 수준의 협치의 관행을 제도화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갈 방안이 절실하다. 정치는 당위와 현실의 조화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여권의 협치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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