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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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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을 단상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7.10.19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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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저 너머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에 깜빡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에도 빠알갛게 물든 노을 속으로 고추잠자리 떼지어 날고 있을 때도 쉬지 않고 여름은 대추랑 도토리, 알밤들을 탕글탕글 영글게 하며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나 보다<윤이현, '여름은 강물처럼'> 입추가 지나고 처서가 지나도 끝이 없던 무더위가 한 풀 꺾였다.

한 낮은 여전히 덥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기까지 하다. 한 여름의 고온다습했던 무더위, 국지성 소나기, 폭우는 마치 아열대기후 국가로 변했나 걱정했을 정도였는데 자연의 섭리 앞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결국 그렇게 여름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그러곤 아름답고 쾌적한 가을이 여름의 뒤끝 그림자 위에 살포시 내려앉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랑이었던 사계절의 균형이 깨져 점차 견디기 힘든 여름, 겨울은 길어지고 반가워하는 봄, 가을은 짧아지는 불균형의 사계가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우리는 짧아진 가을일지라도 기다리며 반갑게 맞이한다. 울긋불긋한 등산복도 꺼내들고 여행지도도 펼쳐본다. 고운 단풍을 찾아 학생들은 소풍을 가고 가족, 직장, 모임에서도 나들이를 간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와 봄에 뿌린 씨앗들에 여름내 땀을 쏟아 부은 결과들을 수확한다.
 
어떤 사람은 흘린 땀 이상으로, 기대 이상으로 결실을 거두고 어떤 사람은 흘린 땀보다 못하게, 기대 이하로 결실을 거두기도 한다. 내 노력을 떠나 태풍, 가뭄 등 자연현상이나 예측·분석할 수 없는 운에 따라 수확이 결정되기도 한다. 대박이 났다고 흥겨워하기도 하지만 보잘 것 없는 결실이나 빈손에 큰 좌절과 실의에 빠지기도 한다.

다음에 더 많은 결실을 기대하며 꿈에 부풀기도 하고 과거를 돌이키며 반성과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박이 나도 '성공의 덫'에 빠지지 말라고 절제하기를 권한다. 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격언도 떠올린다.

실패를 해도 좌절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 실패경험을 자양분 삼아 다음을 기약하도록 격려한다. 우주비행사는 큰 실패경험이 있는 사람만을 뽑는다는 얘기도 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람만이 위기가 닥쳐도 잘 대처할 수 있고 단단해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Kodak, Nokia 등에서 보았듯이 성공에 취해 안주하는 '성공의 덫'이 얼마나 무서운지 직시하여야 하며 수천 번의 실패 끝에 백열전구를 발명한 Edison, 실리콘밸리의 평균 실패경험이 2.8회라는 통계에서 보듯이 실패가 얼마나 큰 성공의 디딤돌인지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가을의 끝자락에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때로는 감성적이 되고 쓸쓸해지며 외로워지기도 한다. 가을의 쓸쓸함은 헐벗고 앙상한 겨울의 나뭇가지들을 미리 맞이해서일까? 결실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 가을을 타는 사람들 그리고 혼집, 혼밥, 혼술... 혼자서 지내는 사람들이 이 가을을 넘기며 쓸쓸함에, 외로움에 빠들지 않도록 누군가 옆에서 같이 있기를 기대한다.

계절마다 사람을 자극하는 감성이 있다. 대개는 그런 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다소 상반된 감정인 우울함과 불행함을 느낀다. 나름 풍요로운 가정에서 부족할 것 없이 산다는 사람도, 유행하는 것·해볼 것·안 해볼 것 다 해보며 자랐다는 친구들도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배우자와 부부싸움을 하거나, 자녀가 말을 듣지 않거나, 친구가 내 험담을 늘어놓더라는 말이 들리는 등 삶의 곳곳에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지만 정작 그들이 그 아픈 마음을 치유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알고 보면 우리들 중에는 많은 일이 벌어지는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정신적인 충격을 감당해낼 만한 감정을 관리하는 것에는 서툰 사람이 많다.마음에 우울함이 번져 있는 이들에게는 옥상에 올라간 어린 소년의 가볍지 않은 깨달음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런 관점에서 공광규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문학은 구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기술의 발전 속에서 자연과 문학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져서 생기는 문제라기보다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달라지고 치우침에 따라 자연과 문학이 등한시 돼가는 것일 테다. 이 사실이 상기될 때마다 사람과 사회가 어딘가 많이 아픈 상태라는 것을 실감케 되는데, 어쩌면 이 느낌이 문명과 문화의 근간이 소멸돼가고 있어서 드는 감정은 아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을 하는 나도 사람들이 자연과 문학을 찾지 않을수록 더 열심히 글을 써야 옳다. 혹시 오늘 괴롭고 우울한 사람이 있다면 그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 하나를 권한다.
 
가을이 왔다. 달이 환하기 좋은, 별이 반짝거리기 좋은 날씨다. 달과 별 뜬 밤에 가벼운 산책을 나오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라. 그 사람이 연인이든, 배우자든, 가족이든 누구든 상관없다.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길을 걸어보시라. 그리고는 하늘 위로 뜬 달과 별을 찾아보며 숨 쉬시기를 권한다. 문득 ‘오늘 하늘 참 좋다’라고 느끼는 순간을 감지하면, 그때 스스로의 마음 한편을 잘 들여다보라. 언제 우울했었냐는 듯이 ‘오늘 내 기분도 참 좋다’라고 말하고 있으리라.

그렇게 무더웠던 찜통 더위도 물러나고 조석으로 소슬한 가을 바람이 우리의 가슴을 적셔 준다. 가을이다. 올 가을은 결실이 많아도 좋고, 적어도 좋은 그리고 사랑으로 이글거리는 단풍으로 빨갛게 물들었으면 좋겠다.서로가 마음을 나누며 이해하는, 그리하여 가을을 넘어 겨울까지도 외롭지 않는 따뜻한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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