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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파에도 얼굴없는 천사들은 어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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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파에도 얼굴없는 천사들은 어김없이…
  • 전국종합/ 김윤미기자
  • 승인 2017.12.21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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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전남 함평군청 주민복지실 탁자에는 직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검은색 비닐봉투가 놓여 있었다.
 직원들이 봉투를 열어보니 동전과 1000원, 5000원, 1만원짜리 꼬깃꼬깃 접힌 지폐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현금은 세어보니 모두 68만1660원이었다. 봉투에는 ‘한겨울 추위입니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 주십시오’라는 메모가 함께 들어있었다.
 지난 14일 경기도 동두천시청 민원실에도 같은 의미의 쇼핑백이 전달됐다. 익명의 40대 여성이 민원실을 찾아와 동전과 지폐로 현금 50여만원을 가득 담은 쇼핑백을 민원실에 전달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쇼핑백에는 ‘사업장을 운영하며 모은 공병(빈 병)과 손님들이 떨어뜨린 잔돈 등을 모은 것입니다. 작은 성의가 어렵고 힘든 분들께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곳에 써주길 바랍니다’라는 메모가 들어있었다.
 해마다 연말이면 추위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연탄, 쌀 등을 기탁하는 기부천사들도 있다.
 지난 19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사무소에는 20㎏짜리 햅쌀 125포대(500만원 상당)가 배달됐다. 쌀 포대에는 ‘추운 겨울, 불우한 이웃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작은 마음을 전합니다’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이맘때쯤 파평면사무소에 쌀 포대가 놓인 것은 올해로 6년째다.
 지난 15일 전남 해남군청에도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 달라며 라면 500박스가 전달됐다. 라면 업체를 통해 전달된 라면은 985만원 상당으로 5년 동안 매년 이맘때쯤 1000만원 상당의 라면이 보내지고 있다.
 익명의 기부자는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선물을 보냅니다. 잠시나마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이 되었으면 합니다’는 짧은 메모도 전했다.
 지난 12일 충북 제천시청에도 누군가 2만장의 연탄 보관증(1300만원 상당)과 ‘연탄이 필요한 이웃에게 부탁합니다’는 메모가 들어있는 하얀색 봉투를 남기고 갔다. 그는 매년 12월15일을 전후해 15년째 선행을 이어오고 있지만 한 번도 자신의 신분을 밝힌 적이 없다.
 그러나 사회 전반에 걸친 팍팍한 살림살이와 함께 각종 기부금 비리까지 겹치면서 세밑 나눔 문화가 급랭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20일 현재 ‘희망 2018 나눔캠페인’ 모금액은 1236억원으로 목표액(3994억원)의 31% 수준이다.
 2015년에는 캠페인 17일째 사랑의 온도가 41.1도를 기록했고, 2014년에는 18일째에 41.5도였다. 올해는 동기간 대비 30%가량 모금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32.9도(현재액 162억원·목표액 492억원), 대구 41.5도(38억원·92억원), 광주 38.3도(19억원·51억원), 울산 55.1도(37억원·69억원), 충북 36.6도(24억원·66억원), 충남 36도(60억원·167억원), 전북 30.9도(23억원·74억원), 경북 30도(43억원·145억원) 등이다.
 부산 28.4도(35억원·125억원), 인천 22.7도(16억원·72억원), 대전 22.7도(13억원·59억원), 경기 22.7도(71억원·316억원), 전남 24.4도(23억원·97억원), 경남 21.5도(20억원·92억원), 강원 24도(23억원·97억원), 제주 18.1도(8억원·44억원), 세종 19.2도(2억원·10억원) 등 9개 광역자치단체의 온도는 30도를 밑돌았다.
 이같이 기부 손길이 줄어든 데는 기부 관련 비리가 큰 몫을 했다고 사회복지단체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올해 터진 이영학 사건 등이 영향을 미쳤지만, 길게 보면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들의 성금 유용사건, 세월호 참사나 국정농단 사태 등 국가 근간을 흔든 대형 사건의 여파로 우리 사회 전반이 '신뢰'가 줄어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선 기부문화가 축소하는 현실이 안타까운데 최순실과 이영학이란 미꾸라지 두 마리가 완전히 흙탕물을 만들었다”며 “국민이 많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어루만지고 결국은 기부금이 제대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취지가 퇴색하지 않도록 기부단체와 정부 모두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기부단체는 투명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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