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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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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믿음
  • 김영미 경기 동두천시 복지정책과 복지관리팀장
  • 승인 2018.12.03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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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썬샤인” 드라마는 1871년 신미양요를 거쳐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을 구하고자 끝없이 나아갔던 의병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다.

 

“그대는 나아가시오. 난 한걸음 물러나니!.”
 
유진 초이(이병헌)가 고애신(김태리)을 살리고자 달리는 열차를 분리하고 정작 본인은 죽음을 선택하면서, 마지막 작별인사로 건 낸 유명한 대사이기도 하다. 그가 얼마나 고애신을 사랑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어,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막걸리 앙금처럼 가슴에 여운으로 남아있다.

 

“독립된 조국에서 씨유어게인...”
 
그렇게 드라마는 안타깝고 슬픈 끝맺음을 한다.
 
잘 될 거라는 미래가 없이, 돌아온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러나, 미스트 썬샤인은 독립된 조국에서 만날 것을 믿었기에 슬픈 끝맺음을 뒤로하고도 안도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현실이 어렵고 힘들다하여도 언젠가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견뎌 낼 수 있다. 겨울이 오는 길목에 나무가 나뭇잎과의 이별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람 한 번에 떨구어 내는 것은, 다음번 찬란한 봄날에 다시 만날 것을 알기에 그리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다면, 어려움은 어려움으로 굳어져 더 이상 깰 수 없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친구와 싸우고 나면 반드시 서로의 사과가 있어야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냥 미적미적하고 넘어간다면 예전과 똑같은 관계 회복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 국가 간 역사의 몇 페이지를 써가다가도 한 번의 어긋남으로 수교단절로 적국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어제의 이견을 오늘의 타협으로 우정의 손을 잡기도 한다.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능라도 연설에서처럼, 어떤 명분을 찾고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 신뢰가 생길 수는 없다. 믿음과 신뢰는 얼핏 같은 뜻인 것 같아도 믿음은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이고, 신뢰는 굳게 믿고 의지함을 말한다. 믿음이 있어야 신뢰가 쌓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말말, 말속에 가둬 얼마나 많은 상대방에게 마음의 화상으로 상처를 주고 있는가?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 “언어의 온도”는 몇 도일까?
 
말 안 듣는 자식에게 대부분의 엄마들은 차라리 집을 나가라고 야단을 친다. 그러나 아들은 엄마가 정말 집을 나가라고 하는 소리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본인의 잘못으로 인해 엄마가 얼마나 속상해 있는지도 안다. 또한, 자신을 잘되라고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억지스러운 얘기를 했다는 것을 믿기에 집을 나가지 않는다. 그러한 믿음과 신뢰가 없다면 그 자식은 집을 나갈 것이다.

 

불신하는 마음으로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 있다.

 

얼마 전,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야기 주제는 성장하는 아이들이었다. 무심코 남편은 “울 애들은 김영미 닮아서 키가 작아요.” 하는 것이다. 그때는 그냥 웃음으로 넘겼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길에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아니,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얘기하시면 어떻게요. 자기는 무심코 던진 말이었지만, 개구리는 돌에 맞아 죽어요. 저는 상처 받았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당연 돌아오는 대답은 “미안하오~” 내지는 “그랬어? 내가 무심했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뭐 이런 거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남편은 “너 개구리니?” 하는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었지만 정답은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말에서 따듯한 위로와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뜻밖에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가...“잘 지내지? 그냥, 걸어봤다.” 하고 끊더라도, 우린 그 이면에 아버지가 나를 보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그냥”은 “아주 그냥”이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요즘, 나는 갱년기가 되다보니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해진다. 가을을 타는지도 모르겠다.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아지고, 결혼보다는 상갓집이 더 늘어났기 때문일까? ‘니가 없이 웃을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 ’라는 노래가사를 흥얼거린다.

 

앞으로의 나의 삶은 건강하게 행복하게 나아갈 것이고 나 또한 노력할 것이다. 그런 믿음과 신뢰가 있기에 지금의 갱년기가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지 않도록 따듯한 언어의 온도를 맞춰 가려 한다.
 
그것은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 있는가?”의 명제가 있지만, 우리는 난제를 해결할 힘 또한 갖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영화 “사도”에서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듯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라는, 뒤주 속에 갇혀 죽어가면서 사도세자가 영조에게 한 마지막 말처럼, 이렇듯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게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십을 앞둔 오늘의 가을 앞에 나도 믿음과 신뢰를 바탕로 따듯한 미소, 다정한 말로, 가족은 물론 주변을 사랑하고자 한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거부하는 안티 에이징(Anti-aging) 보다는, 화합과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인생의 즐거운 변화 엔조이 에이징(Enjoy-aging)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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